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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슈페너 Mar 25. 2024

죽음이라 부르고 여행이라 말한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2023.2.12.

아빠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혼자만의 외로운 여행을 떠나신거다.


5년 전 아빠는 파킨슨 진단을 받으셨다.

정확히 언제부터 발병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오랜 시간 당뇨를 앓으셨고 나이가 드시면서 여러 질병과 함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다. 결국 파킨슨이란 병을 얻으셨고, 운동과 약물 치료를 꾸준히 하였으나 아빠의 몸은 점점 굳어져만 갔다.


병원에서 급히 오라는 연락을 받고 아빠에게 갔을 때는 마지막 숨을 힘겹게 내쉬고 계셨다.

정신이 온전한 상태에서 자신의 죽음과 맞닿아 있는 아빠를 보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아빠! 나야! 큰 딸! 아빠가 젤루 사랑하는 큰딸!'


마지막까지 소리는 들을 수 있다는 간호사의 말에 나와 엄마 그리고 나의 큰 딸은 쉴 새 없이 큰소리로 아빠! 여보! 할아버지! 를 외쳐댔다.

아빠는 자꾸만 얼굴에 씌워져 있는 호흡기를 떼려 하셨고, 무슨 말인가를 하려 안간힘을 쓰셨다. 나는 얼굴을 바짝 붙여 입모양과 들리지 않는 소리를 유추하여 알아내려 애를 썼지만, 마지막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 순간,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어서 아빠가 눈을 감는 것이었다.

어서 편안해지는 거였다.


'아빠는 나에게 최고의 아빠였어!'

'아빠! 사랑해!'

'나중에 만나!'


아빠의 눈에서 가느다란 물줄기가 뜨겁게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지막 눈물이었다.


내가 병원에 도착한 지 세 시간이 다 되어, 무덤덤하고 피곤하다는 표정의 의사로부터 사망진단을 받았다.

가족들이 도착하기 전 아빠는 얼마나 오랫동안 혼자 외롭고 무섭고 힘들게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을까.


죽음은 잔인하다.




남동생은 미국에 여동생은 독일에 산다.

코로나 시기에는 거의 3년 간 보지 못했고, 사실 1년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들다.

나만이 한국에 살며 부모님 곁에 있었다.

마침 돌아가시기 한 달여 전, 나의 딸 결혼식이 있었고 결혼식에 참석한 동생들은 한국에서 아빠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돌아갔다.


눈에 띄게 안 좋아지시는 아빠는 식사하는 것을 점점 힘들어하셨고, 음식물이 자꾸만 기도를 타고 흘러가 폐렴이 생기고 낫기를 반복했다. 의사는 코로 튜브를 삽입하여 식사하는 방법이 있는데, 한번 시술을 하면 입으로의 식사는 영원히 힘들다고 했다.  이러한 방법을 가지고 이견이 있었는데, 아빠는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는 거였고 나 역시 아빠의 의견에 힘을 보태었다.

하지만 엄마는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야지! 어떻게 사람을 굶어 죽이느냐!'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셨다.


코로 호스를 삽입한 후 아빠는 물 한 모금 삼키지 못하셨고, 자꾸만 염증이 생겨 호스를 빼고 끼기를 반복했다.

나중엔 배꼽에 호스를 삽입하는 시술을 하셨고 이것 역시 잦은 염증으로  정상적인 식사를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침상에 누워계신 아빠의 소원은 시원한 냉수 한 사발 벌컥벌컥 들이켜는 것이었고, 나중에 아빠의 입안은 처참하게 말라 가뭄에 쪄들고, 뜨거운 태양에 들끓어 쩍쩍 갈라진 마른땅 같았다.


사실, 아빠가 아프신 동안 엄마와 참 많이 싸웠다.

한번 끼면 되돌릴 수 없다는 호스를 끼우는 것, 이제 영영 정상적인 식사는 할 수 없다는 사실, 호스를 끼지 않으면 더 빨리 사망할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아빠를 설득하고 설득하여 코에, 배에 호스를 끼워놓고 아빠는 더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벌었을까.

그 모든 것은 남아있는 가족들을 위한 시간이었다.

남편을 떠나보낼 수 없는 엄마의 욕심이었다.

나중에 독일에서 온 여동생과 나의 의견은 일치했지만, 미국에서 온 남동생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정답은 무엇일까


마지막으로 아빠가 나에게 부탁한 것은 배에 낀 호스에 또 염증이 생겨 다시 시술을 하게 된다면, 그것만은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백자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

아직 바람은 차고 한강의 물살은 시퍼렇게 일렁인다.


어젯밤 꿈에 아빠는 방 한가득 책이 빼곡하고 커다란 책상이 있는 곳에서, 젊은 시절의 건장한 모습으로 웃고 계셨다.

통창으로 된 커다란 유리창 너머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빼곡히 산을 덮었고, 파란 하늘아래 계곡 물은 맑고 투명한 모습으로  힘차게 흐르고 있었다. 창 밖의 풍경에 놀라 아빠를 쳐다보니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


'나는 여기가 참 좋아! 이렇게 좋을 수가 없어! 나는 여기가 참 좋아!...'


‘아빠! 뭐가 그렇게 좋아?’


‘나는 여기가 참 좋아!’


꿈에서 깨어보니 베개가 흠뻑 젖어있다.

아빠는 좋은 곳에 계심이 분명하다.

고통 없는 곳에서 편안하심이 분명하다.

아빠의 여행은 꽤 괜찮은 듯하다!

아내 바보! 딸 바보! 그만하시고 꿈에서 본 아름다운 곳에서 깃털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편히 쉬시길!


내가 울면 백자는 쪼르르 달려와 내 얼굴을 핥아 준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기라도 하듯 하염없이 핥아준다.

쫌 조름 한 맛이 취향에 맞는 모양이다.

백자는 안다.

내가 슬픈지, 화가 났는지, 기분이 좋은지... 그 분위기를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나를 달래기도 한 쪽에서 조용히 지켜보기도 한다.

또 외출을 하려고 준비를 하면 특유의 묘한 표정과 행동으로 '나 삐졌어!'를 온몸으로 발산한다.

이제 겨우 백자와 함께 한지 일 년이 채 안되었는데, 가장 기쁜 일과 가장 슬픈 일을 함께 겪었다.

우리는 자꾸만 진짜 가족이 되어 가고 있다.


어느덧 아빠 가신지 1주기.

백자와 아빠를 찾았다.

할아버지 앞에서 재롱도 떨고, 신나게 뜀박질도 했다.

백자 덕분에 많이 웃으셨을까.


아빠와 팔짱을 끼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까불이 백자와 산책을 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아빠와 백자는 산책 한 번을 같이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따스한 손을 딱! 한 번만이라도 잡아보고 싶다.


이불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나를 백자는 자꾸만 일으켜 세운다.

눈물을 닦아주고, 옷을 걸치게 하고,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간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이제 우리는 함께 하는 거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그 무엇 그 이상이다!


편히 쉬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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