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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슈페너 Apr 08. 2024

여행하는 강아지 1

여행의 의미와 묘미를 뒤집어 놓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도시를 떠나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여행을 가더라도 북적거리는 도시가 좋았고 멈춰있는 듯한 시골은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끔씩 도시를 떠나 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꼭 대단한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무작정 차를 달려 도시로부터 멀어지는 행위가 하나의 포퍼먼스처럼, 나의 삶에 깊게 자리를 잡았다.


백자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설레고 행복할 때는 같이 여행을 떠날 때이다.

차를 오래 타지 못하는 반려견들도 많은데, 다행히 백자는 차를 참으로 잘 탔다. 아기일 때는 배변 때문에 휴게소에 들러야 했지만,  성견이 되면서부터는 2~3 시간 정도는 차를 달려 목적지까지 단숨에 갈 수 있었다.

이제는 가방을 싸기 시작하면, 눈치를 채고 흥분하기 시작한다.


첫 여행


개와 여행을 하려면 여러 가지 제약이 많다.

숙소는 물론이고 식당과 카페를 일일이 검색하여 들어가야 하고, 단골 가게에는 전화로 양해를 구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점점 갈 수 있는 곳이 많아지고 있지만, 백자와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백자와의 첫 여행은 강릉에 있는 반려견 동반 호텔로 정하였다.  

우리 가족은 무척이나 설레었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모래사장에서 마구 뛰어노는 백자를 상상하며 신나게 차를 달렸다. 백자와 함께 잘 수 있는 호텔이라니!!! 너무나 행복했다.

거의 3시간이 걸렸지만 백자는 차에서 낑낑대지도 불편해하지도 않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무사히 호텔에 도착했다..


하지만 체크인을 하고 호텔 복도로 들어섰는데 분위기가 묘했다.

쾌쾌한 냄새와 함께 어둡고 침침했으며 벽에는 발톱자국과 여기저기 찢긴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무슨 괴기영화에 나오는 음침한 복도가 연상될 만한 곳이었다. 알고 보니 개들과 묶을 수 있는 방은 지하에서 1~2 층 정도로 제한이 되어 있는데 환기가 잘 되지 않고  전망도 없으며, 항상 개들이 드나들다 보니 관리를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기대했던 만큼 적지않이 실망도 했지만 백자와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 큰 위안이 되었다.


저녁을 먹고 온 가족이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얼마 후 옆 방의 개가 짖기 시작했다.


'컹컹! 컹컹컹!!'


백자가 깜짝 놀라 깨더니 따라 짖기 시작했다.


'왕왕! 왕왕왕!!'

'컹컹!! 왕왕!! 컹컹컹!!! 왕왕 왕왕!!....!!!'


둘의 합주가 시작되었다.

동시에 양쪽 방에서 난리가 났고, 각자의 견주들은 개를 조용히 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겨우 진정이 된 듯하여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냠냠!! 찹찹!! 쩝쩝!!'


백자가 똥을 먹기 시작했다. 겨우 5개월에 들어선 백자는 한참 똥을 먹고 있을 때였다.

윽!!! 미치겠다!!

식구들이 하나 둘 일어나 똥을 치우고 이빨을 닦이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 겨우 수습을 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깜박 졸았던 거 같기도 하다.

그때였다.

다시 개들이 짖기 시작했다.


'왈왈!! 왈왈왈!! 왈!!~~~'

'컹컹!! 으르렁!! 컹!!~~~'

'왕왕!! 왕왕왕!! ~~~'

'우~~~!! 으르렁!! 왈왈! 컹컹!! 왕왕왕!!'


위층, 아래층, 옆방, 우리 방의 모든 개들이 동시에 짖기 시작했다.


'왈왈~~~ 컹컹!! 으르렁!! 왕왕왕!! 왕~~~!'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흐흐흐흐~~ 흑!!'

'아~~ 컥컥컥!!'

'으하하하하하~~ 컥컥!!'

'우하하하하하!!!'


눈물이 나도록!

배가 끊어질 만큼!

웃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을 만큼 웃었다.

그리고

창 밖에는 이미 동이 훤하게 터오고 있었다.


강릉 바다에서





강릉의 애견 동반 호텔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지만,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

요즘은 훨씬 컨디션이 좋은 호텔이 여기저기 있고 나름 애견호텔의 성지라는 곳도 생겼지만, 백자와 가본 곳 중 가장 좋았던 곳은 제주의 애견 동반 펜션이었다.


큰 딸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는 백자를 비행기에 태우고 제주도를 가는 것이었다. 이것이 성공하면 나중에 해외에 까지 가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기내용 가방부터 여러 가지 정보를 검색하여 추석연휴에 온 가족이 제주도에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백자의 몸무게인데 기내용 가방 포함 7kg이 넘어서는 안되기에 5.5kg인 백자가 살이 찌찌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가방에 들어간 백자가 7kg이 넘으면 짐칸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제주라는 섬으로 개를 데리고 간다는 것은 생각만큼 간단하지가 않았다.

숙소를 정하는 일부터 일정을 짜는 모든 행위가 백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수없이 여행을 한 곳이지만, 백자와의 여행은 처음이었기에 기대만큼 긴장이 되었다.


비행기는 잘 탈 수 있을까.

기내에서 난리를 피우지는 않을까

갑자기 아프지는 않을까.


그렇게 긴장과 기대가 뒤범벅이 되어 제주로의 여행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2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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