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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슈페너 Apr 15. 2024

여행하는 강아지 2

제주의 품에 안기다

여행은 '어디로 가는 가'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하느냐' 또한 중요하다.

어쩜 '누구와 가느냐'가 여행의 의미와 묘미를 바꿔 놓는 가장 중요한 플롯이 될 수 있다.


개가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백자를 데리고 공항에 도착하자, 개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는 것이 어떠한 일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짐을 부치는데 백자를 가방에 집어넣고 무게를 재었다. 다행히 6.8kg! 혹시나 무게가 많이 나갈까 두려워 살이 찌지 않도록 조심했는데 다행이었다.

문제는 기내에서 발생했는데, 백자를 가방에 넣은 뒤 지퍼를 채우고 앞 좌석 의자 밑으로 집어 넣어야했다. 백자는 도무지 이러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겁에 질려 자꾸만 고개를 내밀었고, 간식으로 유도하고 머리를 집어넣어 간신히 가방을 닫았다.

이 과정에서부터 나는 속상해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답답하고, 무서울까!

제주로 같이 여행을 한다는 건 처음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

이 모든 게 다 나의 욕심이다!

하지만 속상함은 가방에 들어가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백자가 들어간 가방이 앞 좌석 밑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각이 진 가방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냥 식구들 발밑에 두면 안 되겠느냐 사정했지만, 꼭! 앞 좌석 의자 밑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승무원은 말했다.

백자가 짐칸으로 내려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처음 가방에 들어가 갇혀 있는 것도 무서운데 아무도 없는 짐칸에 간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우리 모두가 울상이 되자, 승무원은 마침 비어있는 옷장?(짐을 보관하는 곳)이 비어 있으니 이륙과 착륙 시에만 그곳에 넣어 두자고 했다. 짐칸에 내려가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나은 상황이기에 그렇게 하기로 하고 백자는 가방에 들어간 채, 가족과 떨어져 어둡고 공기도 잘 통하지 않는 옷장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다행히 백자는 너무도 무서운 나머지 끽!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옷장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얌전히 있었다.

더불어 우리는 승무원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주의사항을 들어야 했다. 모두가 처음 겪는 상황이고 다른 승객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되기에 최대한 승무원의 지시에 따르려 노력했다.


나중에 제주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는 오히려 승무원의 귀여움을 독차지했고, 불편함 없이 우리 곁에 있을 수 있었다. 엄연히 규칙은 존재하고 그것을 잘 따라야 하지만 승무원에 따라 어느 정도의 유연성은 있는 듯했다.

그저 운에 맡길 수밖에.


제주의 품에 안기다


제주에 도착하자 비행기에서의 불편함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3박 4일의 일정 내내 막힘없는 대지와 바다 그리고 파란 하늘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어느 곳을 가든 백자가 뛰놀만한 공간은 쉽게 찾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숙소가 마음에 들었다.

아파트에서만 생활하던 백자는 신세계라도 만난 듯 아래층, 위층 그리고 마당으로 뛰어다니며 집구경에 정신이 없었다.

그런 백자를 보고 있자니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졌다.


이전 제주에 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동선으로 여행을 하니 모르던 곳을 많이 알게 되었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여행은 판도를 바꾸어 놓는다.


유럽으로 아트투어를 간 적이 있었는데 그야말로 7박 8일 간 유럽에 있는 박물관, 미술관에서 각종 예술 작품만 실컷 보다가 왔다. 일본으로 여행을 갔을 때는 온천에 몸을 뜨겁게 지지고 왔었다.

요즘에는 트래킹, 맛집, 순례길, 등산, 캠핑 등 다양한 목적으로 개성 있는 여행을 한다. 저마다의 플롯이 다르기에 여행의 의미와 묘미가 다채롭다.


제주를 바라보는 시각이 백자를 위한 플롯에 맞추어지다 보니 더욱 자연 친화적인 여행이 되었다


제주는 백자를 따뜻이 품어 주었다.


백자는 이제 안다.

아니, 아는 것 같다.  

여행이라는 것을.

멀리 떠난다는 것을.

차를 오래 탈거라는 것을.

낯선 곳에서 잘 거라는 것을.


여행은 나에게 '숨'과 같은 것이기에 가능하면 자주 떠나려 하고, 될 수 있으면 백자와 함께 하고 싶다.


책을 사랑했던 나는 글이 쓰고 싶어 졌고, 음악을 전공한 나는 어느 날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도시를 사랑했던 나는 숲의 냄새가 그리워 계획하지 않은 여행을 자주 하게 되었고, 동물을 싫어하던 나는 개를 키우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생명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나는 다 가진 사람이다.

예술이 있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숲이 있으며, 그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백자가 있으니.

물론 가족끼리 혹은 나 혼자만의 여행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 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 백자 역시 중요한 자리 하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제 겨우 4월로 접어 들었는데, 봄이 무르익다 못해 여름으로 치닿고 있는 듯하다.

더 더워지기 전에 나는 또 백자와 떠날 궁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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