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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슈페너 Apr 01. 2024

비로소 보이는 것들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초기 역사의 어느 시점에 어린 늑대가 인간 가족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늑대가 가정견의 공급자가 된 동시에 가축화에 대한 가장 성공적이고 유용한 실험의 주인공이 되었다.  
                                                        -동물학자 이안 맥태거트 코원(Ian McTaggart-Cowan)-

 초기 인류는 늑대를 길들이고 가축화했으며, 결국에는 늑대를 선택적으로 번식시킨 끝에 그로부터 가정견(Caris familliaris)을 탄생시켰다.
                                                             -늑대 전문가 데이비드 미치(David Mech) 교수-

                                                                           

개와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정확히 언제부터인가'에 대한 다양한 가설이 있으나 늑대에서 가축화된 개와 인간은 유대가 워낙 끈끈하여 같이 매장되기도 했고, 오랜 세월 가족의 형태로 발전했다.




우리 동네에는 오래된 시장이 있다.

그곳에는 도장을 파는 집이 하나 있는데, 거의 20년 넘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문 앞에는 개 한 마리가 오랜 시간 그곳을 지키고 있다. 10년은 족히 넘었을까? 지나다닐 때마다 언제나 있었기에 그 개는 오래된 시장 안에 박제된 존재였다.


백자를 키우게 되면서 산책을 하다가 저녁 장을 보러 시장에 자주 들르게 되었다.

그날은 날씨가 매우 더웠는데, 그 개의 옆을 지나게 되었다. 자세히 보니 목줄에 묶여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목줄의 길이는 1m? 아니 50cm? 정도의 길이로 너무나 짧게 묶여 있었다. 가끔씩 찾아오는 손님을 위한 배려인가? 하지만 그 개는 누가 지나가든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무기력해 보였다.


산책은 가끔이라도 시키는 걸까?


어느 추운 겨울날, 백자와 또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백자를 바라보는 그 눈망울!

영하의 날씨에 따뜻한 패딩을 차려입은 백자와 그 모습을 바라보고 덜덜 떨며 짧은 목줄에 묶여있는 개!


주인은 가게 문을 닫고 어딜 간 것일까?

왜  365일 이곳에 묶여 있는 것일까?

추우나, 더우나 왜 항상 밖에 두는 것일까?


그저 무심히 지나치던 곳이었는데,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못했는데 백자를 키우게 되면서 하나, 둘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백자와 산책을 하던 어느 이른 봄날,

또 그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덩그러니 개집만 보이고 개는 보이지 않았다. 놀란 가슴에 백자와 가까이 다가가니 안에서 잠을 자고 있던 개가 우렁차게 짖으며 나온다.


'컹컹! 우 씨! 달콤하게 자는 데 왜 깨워? 컹컹!'

'아! 미안해!'


멋쩍게 웃으며 얼른 그곳을 빠져나왔다.


어쩜 그 개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보지 못하는 사이 넉넉히 사료와 간식을 주고, 늦은 밤 주인과 함께 퇴근을 하며 오고 가는 길에 충분한 냄새와 행복한 경험을 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 이상으로 행복할 수도 있다!

내가 백자를 키우는 방식과 많이 다르다고 하여 그 개가 불행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곳을 지날 때마다 개를 살피게 될 것이고, 신경이 쓰일 것이다.




사촌 여동생은 유기견을 데려다 키운다.

동생의 인스타에는 너무도 잘생긴 개와 함께 하는, 멋진 여행일기로 가득 차 있고 언제나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문구가 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나의 마음은 따끔거렸고, 개를 키울지 말지 고민을 하면서도 유기견을 데려다 키울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백자를 키우면서 분명 존재하고 있으나 보지 못했던 하나의 세계가 열렸다.

분명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세상에는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어두운 사실들이 참으로 많았다. 학대받고 버려지는 개들이 너무도 많고, 일명 개공장이라는 곳에서는 믿기 힘든 처참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비로소 보이는 것들


오래전 같이 그림을 배우던 모임에서  제주도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중에는 개를 키우는 분이 있었는데, 그 개가 그만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고 했다. 그분은 여행 내내 우울해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힘들어했다. 벌써 여러 달째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마침 개를 키우고 있던 친구가 위로를 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슨 개가 죽었다고 우울증 약까지 먹어야 하나?'

'벌써 떠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저러나?'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리고 자꾸만 무서워지고 있다.

그때 공감하며 위로해 주지 못한 그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가끔 키우던 반려견의 죽음을 SNS에 올리는 분들이 있다. 어느 날 그 내용을 자세히 보던 나는 오열했고, 너무나 마음이 아파 위로의 글을 올렸다.

백자를 데려오면서 단 한 번도 '이별'에 대하여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는 것! 이 또한 받아들여야겠지!


얼마 전 아빠를 떠나보내며,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경험했다.

나의 일이 되어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제 누군가의 장례식장에 가면 마음 한 구탱이가 따끔거릴 거 같다.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거 같다. 그리고 같이 부둥켜안고 울어 버리고 말 거 같다.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일들이 나의 일이 되어갈 때, 누구나 겪는 일을 처음으로 마주하며 온몸으로 실감할 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마치 이제 갓 학교에 들어간 신입생처럼 나는 또 다른 세상의 언어와 마음들을 하나하나 배우고 있다.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고

이제야 알 거 같고

몰랐던 세상 한구탱이 아픔들을 걱정하며 살게 되었다.


도대체 내가 모르는 세상은 또 얼마나 많이 존재하고 있을까.

나이를 먹을수록 자꾸만 모르는 것들이 많아진다.


더불어 기도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



너무나 똥꼬 발랄한 백자^^

지금처럼 만 건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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