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공항에 도착하고 밖으로 나오자 타는 냄새가 났다.
뿌연 도시의 아침은 산불로 몸살을 앓는 상황이 그대로 전해졌고, 매캐한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불안이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기차와 택시를 번갈아 이용하여 숙소로 이동했다. 도시를 뚫고 가는 내내 모호한 정체의 개운치 못한 갑갑함을 느꼈고, 파랗기만 했던 하늘과 투명하게 내리 꽂히는 햇살의 청명함은 기억에만 있는 과거형 일 뿐이었다.
내가 알던 도시가 아니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는 스튜디오 형식의 복 층 원룸으로 화사하고 깨끗했다. 짐을 풀고 잠시 눈을 부치기로 했다. 꿀 잠을 자고 눈을 뜨니 밖이 침침하고 노랗다. 벌써 저녁이 되었나 놀란 마음에 시계를 보니 낮 12시! 창으로 보이는 하늘은 노랗고, 태양은 붉게 타고 있다. 마치 불이 붙은 커다란 공 같다. 너무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산불이 옮겨 붙은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타는 냄새는 닫혀 있는 창문 틈 사이로 양해도 없이 들어와 코를 압박하고, 자꾸만 눈을 깜박거리게 했다.
동네를 걸으며 레스토랑을 찾는데, 연기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다. 한국의 미세먼지와는 다른 기분이다. 미세먼지는 익숙한 불행이고, 타는 연기는 익숙하지 않은 두려움이다. 멀다고는 하지만 금방이라도 도시를 덮치고 태워 버릴 것 같은 불안이 자꾸만 목에 걸렸다. 현지인은 그곳의 사정을 잘 알고 예기치 못한 사고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지만, 여행자는 그렇지 않다. 대처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지금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가까운 멜버른(Melbourne)으로 갈까? 많은 생각이 여행자를 괴롭히고, 타는 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산불은 10월 초부터 시작되었고, 두 달째 타고 있었다. 뉴사우스웨일스(New South Wales) 주의 270만 헥타르가 소실되었고, 2천 채가 넘는 주택과 건물이 파괴되었다. 워낙 건조한 날씨여서 산에서 스스로 불을 일으킨다고 한다. 내년 1월까지 비 소식이 없다고 하니 불을 끄는 일은 요원해 보였다.
적당한 레스토랑을 찾아 들어갔다. 그곳은 딴 세상이다. 매운 연기와 노란 하늘 따위는 없다. 모두가 흥겹게 먹고 마시고 수다를 떤다. 호주는 산불이 자주 난다고 하니 익숙한 불안인가?
나 역시 그들과 섞여 맥주를 한 입 들이켰다. 이제껏 칼칼했던 목의 구멍이 펑하고 뚫리는 느낌이 들면서, 흥겨워진다. 이곳은 청정구역으로 산불 따위는 감히 딴 맘을 먹지 못하리라. 마침 금요일이어서 주말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들떠 보였다. 더운 날씨에 레스토랑에서 흘러나오는 캐럴 송은 묘한 기분이 들게 했고, 거리 곳곳에 집집마다 걸려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는 한여름의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어색했다. 에어컨 바람이 너무 추워 스웨터를 걸치고 식사를 하는데, 불안한 마음은 일순간 사라지고 나른한 피곤함이 산불의 위험도 느슨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오후부터 다음날까지 꼬박 이틀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심각한 공황이 덮쳐 한 발자국을 떼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10년째 앓고 있는 공황장애이지만 약을 끊어 가고 있었고, 웬만한 상황에선 스스로 컨트롤이 가능하다. 여행 중 피곤함으로 생길 수 있는 비상용으로 약을 처방받아 가져왔다. 만약에 그 약이 없었다면……생각하기도 싫다.
공황은 산불의 연기로 뒤덮인 도시 시드니에서 나를 결박하고, 5박 6일의 일정에서 이틀을 빼앗아 갔다.
모르는 곳, 아무것도 아닌 존재, 오늘 내가 이곳에서 사라져도 혹은 산불에 휩쓸려 가도 눈치채지 못하는 이방인, 경험해 보지 못한 도시의 타는 냄새, 공기마저 노랗게 때로는 붉은 기운을 내뿜으며 으르렁 거리는 낯선 풍경 그리고 나를 품었던 떠나온 도시에서의 서운함.
내가 알던 도시를 떠나 새로운 충전의 기운을 품으려 했던 여행은 불안과 쇠약해진 마음으로 나를 버렸던 도시로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몸살까지 겹치며 열이 올라 누워만 있던 나는 3일째 아침 겨우 침대를 벗어나 거리로 나설 수 있었다. 동네 작은 카페의 식사는 처음 만난 연인같이 쑥스럽게 조심하며 삼켰고,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점점 회복되어갔다. 다행히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는지 산불이 진화되었는지 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신선했다. 탄내는 나지 않았고, 내가 알던 도시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머지 날들은 맑은 날씨 속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서기라도 하듯 도시 곳곳을 바쁘게 누비고 다녔다. 꽉꽉 채워 넣은 알찬 만두 속같이 포만감을 주며 여행의 기쁨을 만끽했다.
3일은 에어 비앤비 숙소에서 이틀은 호텔에서 묶기로 했었다.
6일째 ,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알람을 맞춰 놓았다. 눈을 뜨는 순간 매캐하게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환풍기가 있는 화장실은 더 심각했다. 가슴이 벌렁 거리며 호텔에 불이 났나? 하는 공포가 싸늘하게 덮쳐왔다. 안내 데스트에 전화를 하니 산불이 더 심해지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냄새가 나는 것이라 한다. 창밖을 보니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를 포함한 도시는 짙은 안개가 낀 듯 뿌연 연기 속에 간신히 형태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체크 아웃을 하는데, 호텔 측에서 미안하다며 마스크를 챙겨 주었다.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탄내와 연기를 뚫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거의 도망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비행기가 무사히 떠야 할 텐데...
한국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무슨 재난영화 한 편을 찍은 것 같고, 이번 여행은 망했다는 생각에 본전 생각이 났다. 뉴스에서는 내가 출발하던 날의 시드니 상황과 2만 명의 시민이 모여 정부의 대책에 항의하는 시위 장면이 올라왔다.
여행의 기쁨은 불확실성이 가져오는 불안과 쾌감 사이에 존재한다.
'익숙한 불안'이 신물 나 이 도시를 떠났던 나는 '익숙하지 않은 불안'으로부터 무사히 도망쳐 미세먼지 가득한 도시를 거부감 없이 바라본다.
2019.12월 호주 여행을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