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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광우 Apr 07. 2023

아내의 눈길과 나의 눈길

 여보, 오후에 소일삼아 카페나 다녀오지 않을래? 지루한 일상을 타파하기 위해 아내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었다. 마주앉아봐야 둘이 정겨운 모습을 보이며 알콩달콩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아니었기에 함께 카페를 간다는 것이 큰 의미는 없었다. 찻잔을 앞에 놓는 순간 아내는 아내대로 인터넷 서핑이며 독서를 즐길 게 뻔했고 나는 나대로 또 글을 쓰거나 며칠 앞으로 다가온 우리들의 여행계획을 짤 것이 뻔했다. 동행을 권유한 건 어딘가 외출할 때마다 오가는 길의 벗으로 삼아온 오랜 습관 탓이었다. 

 오늘은 바빠. 그동안 당신하고 싸돌아다니느라 밀린 집안일들이 많기도 하고 내일 아이들이 집에 온다는데 밥이라도 한 끼 해먹이려면 장도 좀 봐야 해서. 그랬다. 내일은 일요일인데다 내 생일이라 두 시간 거리에 살고 있는 아들내외가 집으로 올 예정이었다. 아내의 거절이 못내 서운했지만 집안일이라고는 손도 까딱 안하면서 오히려 아내의 일손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난 구태여 서운한 감정을 입 밖으로 뱉어내고 말았다. 알았어. 아들만 중요하다 이거지? 사실 그건 아내를 향한 불만이 아니라 거절을 당한 무안함을 지워보려는 일종의 방어기제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고는 아침운동을 하고 막 들어온 몸이라 욕실로 향했다. 비누칠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바깥에서 아내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샤워기의 꼭지를 틀어 잠그며 대답했다. 아침은 식탁 위에 차려놓았으니 나오면 먹어. 난 잠깐 자전거 타고 마트에 다녀올게. 알았다는 대답으로 우리의 대화는 끝났지만 오후에 장을 보러간다 하고서는 아침부터 설쳐대는 품이 이상했다. 하지만 그것도 곧 사라졌다. 함께 장을 볼 때마다 녹음기처럼 늘 반복하던 말이 떠오른 탓이었다. 연어는 여기서 사면 안 돼. A마트에 가면 삼천 원이나 더 싸. A마트에 가면 그 말은 또 바뀌었다. 돼지고기는 B마트가 최저가야. 마트마다 특가상품 품목이며 가격표를 줄줄이 외는 아내였으니 최저가를 향해 마트순례를 계획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루 동안 돌아야 할 마트가 많으니 오전 오후로 나누어 방문계획을 짠 것이겠지.

 점심을 먹고 난 후였다. 거실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지금 안 나갈 거야? 난 준비 끝났어. 아내의 의도를 짐작할 수 없어 거실로 나갔다. 채 거실에 도달하기 전에 아내는 외출 때마다 들던 가방을 어깨에 멘 채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아니 오늘 바쁘다 했잖아. 그래서 오늘 하루는 방콕하려 마음먹고 있었는데? 여전히 의구심을 버리지 못해 눈을 동그랗게 뜬 나를 보며 아내가 환하게 웃었다. 무슨 소리야. 아까 마트 다녀온다 했잖아. 당신하고 카페 가려고 아침부터 자전거 페달을 엄청난 속도로 밟으며 갔다 왔구먼.

 아내는 아침에 나의 제안을 거절하면서도 내 표정을 일일이 살피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내가 그다지 크게 낙담하거나 실망하지 않았기에 의도적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아마 스쳐 지나는 느낌으로라마 언짢은 표정을 지었던 모양이다. 잠시 무안함에 사로잡혔던 것은 사실이니 미세하나마 표정에 변화가 있었던 것이겠지. 중요한 건 아내가 그런 것까지 캐치해낼 정도로 나를 주의 깊게 살폈다는 점이다. 그건 말을 뱉는 순간 혹시라도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을까 걱정한 증거나 다름없었다. 바쁘다면서도 저렇게 외출준비를 하고나선 걸 보면 그 보상심리가 작동한 것이리라.

 난 하던 일을 멈추고 후다닥 가방을 챙겨 나섰다. 나 또한 무언가로 아내에게 보상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언뜻 떠오른 것이 커피였다. 좋아. 오늘 커피는 내가 쏜다.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아내가 또 한 번 웃었다. 오후에 커피 마시면 잠 못 잔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난 커피 말고 고구마라떼 먹을 거야. 그때서야 나는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과 아내를 바라보는 내 눈길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다. 반면 아내는 지금 내가 이렇게 미안해한다는 걸 눈치 채고 또 다른 자신만의 보상심리를 발동시키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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