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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광우 Apr 18. 2023

아내는 내 주치의

 나 조금 있다가 치과 가야해. 아내는 그렇게 자신의 치과예약사실을 내게 알려왔다. 그 말에는 동행여부를 알려달라는 요구가 포함되어있었다. 외출할 때마다 바늘 가는데 실 가듯 따라다니지 못해 안달하는 나였으니 아마도 자신의 외출동선을 계획하는데 그것이 중요한 고려요소였으리라. 난 바쁜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백팩을 챙기고. 

 버스를 탔다. 그때서야 아내가 간다는 병원이 안과가 아니라 치과였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분명 아내가 얼마 전까지 다닌 병원은 안과였다. 햇볕에 길을 나서면 눈이 시려 잘 뜰 수가 없다며 병원을 찾았으니 틀림없었다. 그런데 왜 치과를 간다고 했을까? 내가 말을 잘못 들었던 것일까? 옆자리의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당시 오늘 간다던 병원이 안과야, 치과야? 아내는 다시 한 번 명확하게 치과라고 말했고 그 이유까지 세밀하게 설명해주었다. 눈의 상태는 병원에 다녀온 이후로 많이 좋아져 이제는 불편을 거의 느끼지 않을 정도가 되었으며, 오늘은 며칠 전부터 잇몸이 부어올라 그 문제를 치료하기 위함이라고.

 새삼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평생 병원이라고는 모르고 지내던 아내가 사흘들이로 이렇게 병원을 찾게 될 줄이야. 더더군다나 아내는 죽을병에 걸려도 차라리 모른 상태로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할 정도로 나만큼이나 병원가기를 싫어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병원을 마치 출근하는 직장마냥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상전벽해가 아니고 무엇일까?

 아내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참 당신도 어금니 하나 없다고 했잖아. 오늘 간 김에 검사받고 임플란트하는 게 어때? 아내의 그 말은 내가 안고 있는 치아의 문제점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요 며칠 전부터 난 음식을 씹을 때마다 왠지 한쪽 편의 어금니가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반대편 치아를 많이 사용해야했다. 문제는 그쪽이 바로 아내가 지적한 어금니 하나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결국 이쪽도 저쪽도 씹는 행위는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생존에 있어 영양분 섭취만큼 중요한 일이 없거늘 은근히 그건 나의 한 가지 걱정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한 술 더 떴다. 눈도 검사받아봐야 해. 우리 나이에 백내장 녹내장 그런 병으로 수술하는 사람들 많잖아, 왜?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 역시 아침에 일어나면 흐릿해진 눈을 몇 번이나 비벼대고 눈곱을 떼어내고 해야 정상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 그뿐인가. 하루가 다르게 노안이 심해져 휴대폰의 글씨 크기가 커져가고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이용할 때면 따로 저도수 안경을 써야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던가. 저절로 우울해져갔다. 

 그럼에도 난 대답을 생략하는 것으로 거부의 뜻을 전달했다. 그 정도의 증상들이야 나이가 들면서 겪는 아주 당연한 현상으로 애써 치부했다. 아내가 권한 것들이 현재의 내 몸 상태를 감안했을 때 과다의료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라 여겼다. 일단 의사의 진료를 받는 순간 살아가는데 하등 문제없는 것들도 침소봉대되기 마련이라며 스스로 거부의 명분을 만들어 합리화했다. 

 예약을 해둔 탓에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는 진료실로 향했다. 난 기다리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대기실에 마련된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꺼내들었다. 서너 페이지나 읽었을까? 주머니에 든 휴대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낯선 번호였다.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전화는 한 병원의 건강관리센터에서 온 것이었다. 올해가 정기검진을 받을 해인데 만약 예약을 원하시면 도와드리려고요. 상담원의 말을 듣는 순간 검진을 받은 지 벌써 2년이 지났음을 깨달았다. 아울러 검진을 위해 전날 힘들게 금식하던 기억이 머리를 스쳐 지났고 위내시경을 하면서 끊임없이 올라오던 구역질을 참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피하고만 싶던 순간들이었다. 검진일을 최대한 미뤄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솟구쳤다. 

 막 입을 떼려는데 다음 달에 예정되어있는 아내와의 여행이 떠올랐다. 연기를 한다면 그 날짜보다 더 이후여야 했다. 그건 여행하는 도중에도 검진이라는 불편한 단어를 계속 머릿속에 넣은 채로 다녀야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었다. 여행 전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검진일이 예약되기만 하면 그 날짜가 도래할 때까지 끊임없이 검진 스트레스에 시달릴 게 뻔했다.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역설적으로 검진일을 최대한 당기는 것이었다. 

 하루일과 중에 가장 힘든 달리기를 내가 아침에 하는 것도 그와 비슷했다. 아침에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그걸 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루 중 나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시점이 달리기를 막 끝낸 시점인 것도 다음 날의 힘든 시점까지 남은 시간이 최대가 되기 때문이었다. 

 발병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렵긴 하지만 대신 빨리 아는 만큼 치유확률이 높아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그 길이 외려 병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이는 길이었다. 아내가 요즘 병원을 마치 생쥐 풀방구리 드나들 듯하는 것도 어쩌면 그걸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순간 생각을 고쳐먹었다. 난 상담사에게 검진 받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이 언제인지를 물었다. 그리고 간단히 그 날짜로 예약을 마쳤다. 진료실에서 아내가 나왔다. 아내의 옷차림이 의사가운으로 바뀌어있었다. 아내를 따라나선 바람에 내 병원기피증은 서서히 치유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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