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따라 난 굉장히 무거운 기분이었다. 그건 더위를 식힐 겸 제법 많은 양을 마셔버린 전날의 맥주 탓도 아니었고, 최근 며칠간 계속된 열대야로 잠을 설친 탓도 아니었다. 새벽잠에서 깨자마자 습관처럼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며 잠기운을 털어내듯 온몸을 부르르 떨 때 도착한 바로 그 한 통의 문자 때문이었다. ‘김기찬 본인 상. 발인 8월 5일, 장지 김해 선영.’ 내 핸드폰은 아주 선명하게 죽마고우의 부고를 전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직 육십 대 초반의 나이였기에 본인의 부고를 주고받는 것에는 그리 익숙하지 못했다. 난 혹시 주변 가족의 부고가 잘못 전해진 것은 아닌지 이리저리 알 만한 곳으로 수소문해보았다. 하지만 내 기대는 보란 듯이 빗나갔고 그건 분명 친구 본인의 사망소식이었다. 무엇보다 가슴이 아팠던 건 죽음의 원인이 사고사라는 점이었다. 지병과 같이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 아니라 갑작스레 닥쳐오는 바람에 미처 가족들과의 이별에 대비조차 할 수 없었다는 사실. 교통사고…….
울적해진 기분을 달래고자 서둘러 집을 나섰다. 주변 공원을 산책이라도 해볼 심사였다. 아침공기는 상쾌했다. 맑은 공기를 폐부 깊숙이 받아들이며 천천히 공원에 들어서자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침기운을 벗 삼아 운동을 하는 중이었다. 호수를 빙 둘러 에워싼 순환형의 길을 뜀박질하는가 하면,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또 더러는 네트를 사이에 두고 편을 나눠 배드민턴을 치기도 했다.
호수를 반 바퀴쯤 돌았을 무렵이었다. 길가로 무궁화나무들이 도열한 채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불현듯 어린 시절 고향의 뒷산에서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 술래가 눈을 가린 채 하나 둘 셈을 하며 열까지 헤아리는 사이 나머지 아이들이 모두 숨어버리는 그 놀이. 그들 가운데는 기찬도 포함되어있었다. 우리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셈을 대신하곤 했다. 그건 10음절로 구성된 그 문장을 한 차례 욈으로써 하나부터 열까지를 모두 센 것으로 간주하는 우리들만의 규칙이었다.
추억은 새삼 기찬의 부재를 더욱 피부에 와 닿게 하면서 안타까움을 키웠다. 다시 문자를 열어본 나는 그저 망연해져갔다. 그때 색다른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 노인이 무궁화나무 아래에서 막 떨어지기 시작한 꽃잎들을 하나하나 갈무리하고 있었다. 꽃잎에 묻은 흙을 일일이 털어내며 가지고 있던 성경책 사이에 꽂는 그 모습은 마치 무슨 신성한 의식을 치르기라도 하는 형색이었다. 난 무심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서있었다. 한참동안 그 일에 몰두한 노인은 땅바닥에서 꽃잎들이 거의 사라질 때쯤에야 허리를 폈다. 고개를 든 노인의 시선이 나의 것과 마주쳤다. 의아함이 가득한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노인은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다가서며 말을 걸어왔다.
“왜 내가 이상해보이우?”
“글쎄요. 이상하다기보다는 무언가 사연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나의 반문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손자가 최근에 군대에서 훈련 도중 사고사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나라를 지키다 죽었으니 어찌 나라의 꽃인 무궁화를 보면 그 아이 생각이 나지 않겠냐는 게 그 이유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이 노인은 말을 이었다.
“이놈의 꽃이 피었으면 그냥 가만 있지 금세 떨어져버리니 왠지 그 애 흔적이 자꾸 사라지는 것 같지 않겠수? 그래 이렇게 잘 간수하려는 것이지. 성경이라면 녀석의 천국행을 도와주겠다 싶기도 하고.”
그 말을 듣는 순간 활짝 핀 무궁화 속에서 기찬의 모습도 어른거렸다.
“그래서 무궁화가 피는 이때면 자주 여길 찾아온다우.”
어디선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기찬도 할아버지의 손자도 그 소리에 어디론가 숨어버린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주변을 돌아보았다. 노인이 등을 돌려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양 어깨가 가족을 잃은 슬픔에 짓눌려 한층 쳐져보였다. 난 두 손을 가득 모아 입가로 가져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얘들아, 게임 끝났어. 이제 모두들 나와.’
저쪽 끝에서 기찬과 할아버지의 손자가 손을 잡고 뛰어나오는 모습이 또렷해지다 서서히 흐려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