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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원 Feb 22. 2024

돌봄이라는 봄

엄마가 저물어간다

혹독한 겨울을 지나는 옥의 두 눈에 생기를 찾기 힘들다. 가만히 한 곳을 응시하는 힘없는 시선이 마른 가지처럼 툭- 떨어질 것만 같아 그 시선에 애써 마음을 포개어보지만 ‘엄마- 겨울이 지나면 곧 봄이 올 거야.’라는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한다. 온몸으로 겨울을 겪어내는 옥에게 믿어지지 않는 봄을 입에 올리는 일이 행여 무례함이 될까 봐. 슬픔이 될까 봐. 


폐암 수술 후, 간신히 퇴원했던 옥은 바닥난 면역 때문에 폐렴이 찾아왔고 다시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패혈증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온갖 항생제를 투여받으며 2주가 넘어가는 시간을 버티고 버텼지만 염증수치는 가라앉지 않았고, 옥은 결국 포기를 선언했다. 수술 부위가 채 회복하지도 못한 상태인데 항생제 부작용으로 오한과 구토, 시도 때도 없는 어지러움과 식은땀은 해도 너무한 일이었다. 보다 못한 아버지는 옥을 설득하려 상주 보호자로 병원에 들어갔지만 처음 보는 아내의 얼굴과 표정에 가슴이 무너졌다. 결국 며칠 버티지 못하고 전화가 왔고 나는 간단한 짐을 챙겨서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조 선생님은 더 이상 항생제 치료를 권하기가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의사로서 욕심 같아서는 마지막 남은 항생제까지 시도해 보고 싶지만 환자가 너무 힘들어해 버텨줄지 모르겠다 하셨다. 그의 배려가 다정하면서도 슬프게 느껴졌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옥에게 나랑 같이 딱 일주일만 더 해보자 말했다. 옥은 대답이 없었다. 그 침묵에서 홀로 버텼을 지난 2주의 시간이 찰나에 흐르는 듯했다. 코로나 시국과 옥의 고집 때문이었지만 힘든 시간을 홀로 내버려 둔 것 같아 죄스러움이 들었다. 나는 무례하게 그의 침묵을 밟고 한 번 더 설득했고, 그렇게 옥과 나의 일주일이 시작되었다.




첫째 날 

이 지경이 된 상황에서도 1인실로 옮기는 일을 망설인다. 평생 달고 산 오랜 버릇 같아 우물쭈물하는 옥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 땀으로 침대 시트를 적시는 옥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옷을 갈아입으려면 무조건 1인실로 가야 한다. 보험처리에 대한 설명을 굳이 덧붙여서 옥을 설득해 1인실 병실로 옮겼다. 4-5시간 간격으로 혈액을 통해 매일 항생제 3팩을 맞는다. 식사는 구역감이 심해 간신히 단백질 음료로 끼니를 때운다. 나 혼자 병원밥을 먹는 것이 아주 잠깐 죄스러웠지만 그렇게 느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럴 여유가 없다. 


둘째 날

옥은 먹은 것도 없는데 구토가 잦다. 특히 밥 냄새를 맡으면 헛구역질이 시작된다. 항생제와 함께 구토억제제 처방을 요청했다. 혹시 약이 몸에 맞지 않을 상황을 대비해 간호사에게 먹는 약과 혈액으로 투여받는 약 2가지를 준비해 달라고 했고, 조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냈다. 옥에게는 특별히 선생님이 구토억제제를 두 종류로 처방해 주셨다고 설명하며 어제보다는 구토가 많이 줄어들 거라 말했다. 나는 의사도 뭣도 아니지만 내가 뱉어낸 말이 그저 사실이 되기를 바랐다. 


셋째 날

항생제 투여가 시작되면 병실 온도와 관계없이 식은땀을 온몸으로 쏟아낸다. 여벌의 환자복 3세트와 추가 온열 램프를 요청했다. 병원 규율상 어렵다는 간호사의 말에 조 선생님께 꼭 필요하다고 전해달라 부탁했고, 주치의 한마디에 전화 한 통으로 안 되던 일이 되었다. 땀을 비 오듯 흘리던 옥은 환복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추워했고 이때마다 온열 램프는 구세주가 되어주었다. 축축해진 환자복을 램프 위에 걸어놓으면 다음번 항생제 투여까지 잘 말라있다. 간호사에게 매번 부탁하는 걸 미안해하는 옥을 위해서 상의 3장을 온열 램프로 말려서 돌려 입기로 했다. 이 와중에 뭘 미안해하냐, 제발 그러지 말아라는 말은 도움 되지 않는다. 미안한 마음까지 돌보아야 한다. 


넷째 날

폐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로비가 있는 1층 방사선실로 내려가야 한다. 다른 환자들 때문에 기다리다 감기라도 걸릴까 봐 엑스레이 촬영을 이른 아침으로 정했다. 옥을 부축해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긴다. 링거줄과 산소통줄이 엉키지 않도록 정리해 놓은 뒤에 데워놓은 온찜질팩과 땀을 닦아줄 수건을 챙겨서 이동을 시작한다. 방사선실에 도착하니 촬영을 위해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야 한단다. 아차차. 다음번엔 재킷보다는 담요가 낫겠다. 링거줄이 엉킬 위험도 줄고, 옷 입는 대신 담요를 덮으면 그 사이에 느낄 한기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다섯째 날

다시 입원하고 처음으로 돼지고기 세 점과 밥 세 숟가락, 아버지가 가져온 장어탕까지 먹는다. 구역질도 많이 호전되어 밥 먹는 옥을 핸드폰으로 찍어 아버지에게 보냈다. 눈물이 난다고 답장이 왔다. 조 선생님이 회진을 오셨다. 좋아진 컨디션과는 달리 검사 결과는 호전이 없다고 하셨다. 속상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오랜만에 밥 먹어서 배부르다는 옥에게 단백질 음료까지 억지로 챙겨 먹인다. 






새벽 4시가 항상 고비다. 새벽 1시쯤 옥이 잠든 사이 간호사가 마지막 항생제 팩을 투여하면 다 맞을 때까지 3시간 정도 걸린다. 1시에서 3시 사이는 편한 표정으로 잠을 자서 일지에 줄여서 ‘편표잠’이라고 기록한다. 새벽 4시쯤 되면 잠결에 인상을 쓰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오한과 함께 식은땀이 찾아온다. 잽싸게 램프 위에 말려둔 수건으로 흥건해진 이마의 땀을 닦아내고 두건을 갈아준다. 온열 램프만 켜져 있는 병실에서의 밤. 램프 위에 걸쳐있는 수건이 주위를 가려 옥의 표정만 스포트라이트다. 방금 갈아서 올린 축축한 수건 너머로 감긴 옥의 눈을 멍하게 응시하다가 낮에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난 정말 진심으로 아픈 옥의 곁을 지키는 게 좋다. 아프고 나서야 나도 그녀도 서로를 곁에 둘 명분이 생긴 듯해서. 해외 생활이 대부분이었던 아들에게 ‘언제 오냐’, ‘보고 싶다’라는 말 한번 편하게 못했던 옥이었다. 어떤 부모는 부탁도 요구도 염치없이 잘만 하더만 옥은 왜 이 모양인지. 아이러니하게도 폐암은 나와 옥 사이의 괜한 강을 좁혔다. 병원까지 오게 해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는 옥의 반복되는 말에 나는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비로소 엄마 곁을, 당신의 돌봄을 허락해 줘서 고맙다고. 나의 서툰 고백이 옥의 마음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아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라며 내 품에 꼭 안긴 옥이 낯설어서 눈물 나고, 반가워서 감격스럽다. 그렇게 그리움으로 덮고 배려라는 이름으로 참았던 서로를 향한 사랑이 비로소 고마움으로 만났다. 


새벽 동이 트고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배식 차 소리가 들린다. 어느덧 옥의 표정이 편안하게 풀려있고 깊게 잠이 들었다. 나는 일지를 꺼내 ‘아침 6시 25분, 편표잠’이라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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