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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원 Apr 11. 2024

엄마를 쓰다가

엄마가 저물어간다

항암 치료는 3주 만에 어김없이 돌아왔고 나는 병원 가기 며칠 전 부산으로 내려왔다. 6개월 *항차를 끝낸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셨고 우리 식구가 모두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전부 모여도 고작 세 명이라 엄마와 나, 아버지가 함께하는 집밥은 우리에게 일상보다 이벤트에 가깝다. 매번 아버지 휴가가 시작되고 맞는 첫 끼는 조금 어색하긴 해도 이제는 그 어색함마저도 익숙해진 지 오래다.


저녁밥을 한 숟가락씩 뜨고 별스럽지 않은 안부를 주고받다 보니 예열이 완료됐다. 불씨가 붙은 대화는 활활 타오르고 서로의 이야기를 저마다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떠들다 보니 이번에는 기록을 제대로 깬 듯했다. 시계가 3시간을 훌쩍 넘어 가리키고 있었다. 과장되게 고갤 내저으며 서로를 징그러워하는 척했지만 사실 속으로 알고 있었다. 우리가 대화 속에서 서로를 향해 안전하게 기대고 있다는 걸. 있는 그대로 마음을 꺼내놓는 일이 이제는 가장 빠른 길이 되었다는 걸. 각자 오래도록 고집해 온 배려가 엉킨 미로에서 서로의 진심을 헤매던 시절로 셋 중 누구도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아프고 나서야 시간은 유한해졌고, 서로의 마음이 교차하는 기쁨이 공통의 것이 되었다. 우리가 필사적으로 성취한 생기. 그 생기와 맥주에 취해 나는 이날 기분 좋게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엄마 목소리가 많이 잠겨있었다. 어제 너무 무리했나 싶었는데 자기 전 갑작스럽게 찾아온 통증으로 밤새워 고생했단다. 엄마는 오른쪽 등 아랫부분이 찌르듯 아파져 와 진통제를 먹었지만, 소용없었다는 말을 아침 인사로 대신했다. 아픈 건 참고, 아파도 숨기는 것이 기본값이던 엄마의 변화가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이전에 없던 엄마의 통증이 걱정되었다. 반가움과 걱정이 마음 하나에 섞일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진통제 부작용으로 메스꺼움까지 덩달아 찾아왔다. 엄마는 아침, 점심 식사도 건너뛰더니 하루 종일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안쓰러워 당장 병원에 가보자 했더니 어차피 내일 가는 병원, 예정대로 움직이자 했다. 앙다문 입으로 이마에 식은땀을 닦아 내는 엄마를 더 설득해 보려다 혼자 머금은 말을 그냥 삼키고 조용히 방문을 닫아 주었다.


엄마 몫의 수저를 치우고 아버지와 단둘이 먹는 밥상이 눈에 띄게 조용했다. 숫자로 치면 한 명이 빠졌고, 우리 가족 과반수 이상이 함께하는 밥상인데 어제와는 너무 달라 조금 슬퍼졌다. 엄마의 투병이 시작되고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했건만 하루치의 기쁨 뒤에 하루짜리 슬픔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 머리로는 완치는 언감생심 통증이 아예 없길 바라는 건 터무니없다는 걸 알아도, 밤새 엄마가 조금 덜 아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내 맴돌던 생각이 꼬리를 물어 그날의 기도가 되었다.




엄마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한동안 글을 쓰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엄마가 흘러나왔다. 한참을 쓰다가 어느 순간부터 엄마를 옥으로 쓰고 싶었다. 엄마를 엄마가 아닌, 있는 그대로 보고 싶었다. 그런데 결국 엄마를 다시 쓰고 있다. 엄마가 이름표 때문에 슬펐던 건 아닐지 혼자 마음대로 상상했다. 누군가의 딸, 아내, 며느리, 그리고 엄마. 자식이 하나밖에 없는 엄마는 나 말고는 당신을 엄마라고 부를 사람은 없다. 내가 있어서 엄마는 엄마가 되었고, 엄마다. 엄마라는 이름표만이라도 없다면, 엄마가 조금 홀가분해질 수 있을까 순진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를 열심히 쓰면서도 엄마를 애써 지우려 했다. 그렇게 쓰고 또 쓰고 돌고 돌아서 결국 엄마다.


    그래라, 그건 네 버전의 나니까.


내가 엄마에 관한 글을 써도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처음엔 묘하게 섭섭했는데 나는 이 대답 기대어 엄마를 조금 수월하게 쓸 수 있었다. 엄마를 쓸 때마다 되뇌었다. 그래, 이건 내가 쓰는 엄마지. 애초에 엄마가 엄마인 내가, 엄마를 엄마가 아닌 누군가로 쓰려고 했다는 건 무모했을 수도. 그래서 이렇게 쓰고 또 쓰고 돌고 돌아서 엄마를 쓴다. 저물어가는 엄마를, 스러져가는 엄마를, 그러다 한순간 붉게 작열하는 엄마를, 그 모든 엄마를 쓰고 또 쓴다. 그리고 언젠가 해는 결국 저물고 어둔 밤이 찾아올 테지만, 그때 혹시 떠오를 어떤 별 하나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배에서 화물을 하역한 때로부터 다음 화물을 하역할 때까지 이루어지는 작업 공정. 글쓴이의 아버지는 선박 기관장이다.




계획보다 3주를 연장한 10개 글로 <엄마가 저물어간다> 연재를 종료합니다. 쓰는 일이 좋아져서 무작정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읽히는 경험'으로 확장되도록 좋아요와 댓글로 감응해 주신 한분 한분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특히 계속 쓸 수 있도록 조건 없는 격려와 지지 보내준 글방 동료들 많이 감사합니다. 


강원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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