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킹 에세이 #0006
10월 9일. 월요일. 오늘은 발렌시아 공휴일. 여전히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따스하다. 하지만 바깥이 시끄럽다. 며칠 전부터 시작한 건너편 아파트 외벽 공사. 글쓰기 방해꾼이 나타났다. 오늘은 휴일이라 쉴 줄 알았건만….
스페인답지 않은 상황. 여기 사람들 공사하는 것 보면 속이 터질 정도로 천천히 한다. 다니다 보면 변하지 않는 모습의 공사 현장을 자주 마주한다. 하지만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그곳을 지나치다 보면 어느새 완공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제가 그랬다. 집에서 바닷가로 가는, 수년째 막혀있던 직선 도로가 시원하게 뻥 뚫렸다. 하지만 오가는 차량은 거의 없다. 여전히 사람들은 돌아가는 좁은 도로로 다닌다. 이해가 간다. 오랫동안 우회도로에 익숙했으니까….
오랜만에 이브 몽땅(Yves Montand)의 고엽(Les Feuilles Mortes)을 유튜브에서 찾아 듣는다.
https://youtu.be/JWfsp8kwJto?si=jDLLkq54mJf4jGLK
쟈끄 프레베르(Jacques Prevert)의 시로 만든 노래.
나는 그의 시 <알리칸테>를 인터넷에서 찾아 적어본다.
탁자 위에 오렌지 한 개
양탄자 위에 너의 옷
그리고 내 침대 속의 너
지금은 부드러운 현재
밤의 신선함
내 삶의 따사로움
짧은 시지만 이곳을 가장 멋있게 표현했다.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럽인들에게는 늘 꿈꾸는 휴양지. 알리칸테. 지중해의 따스한 물에 발을 담그고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마 여러분들도 쟈끄처럼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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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그리움
바람은 높은 나무 끝에서 살랑거렸습니다.
아직 쌀쌀한 아침.
안개비.
저는 곁가지 오솔길로 굳은 발을 뗐습니다.
구부정한 소나무 사이로
흐린 그림자가 서글프게 뒷걸음칩니다.
당신을 찾아 헤맨 혼란이 점점 또렷이
눈앞에 파고를 만듭니다.
살짝 주름진 입가의 미소로
고개를 돌리지만
결국 다갈색 뺨에 난 두 줄기 자국.
당신은 내게
차가우면서도 따스하고
까끌까끌하면서도 부드러웠습니다.
붉은 그리움이 자꾸 눈을 물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