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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Feb 01. 2024

죽이고 싶지만 섹스는 하고 싶어 #1

지하철을 탄 나는 기분이 좋았다. 조금 전 끝난 회식 자리에서 부장에게 칭찬을 들었기 때문이다.     


“요즈음 MZ세대답지 않아요. 우리 조필호 사원. 열심히 하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인연으로 오래오래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자 그럼 우리 귀염둥이 신입인 조필호 사원을 위해 건배합시다!”   

  

과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저도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우리 회사에 복덩이가 들어 온 것 같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다른 직원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나는 쏟아지는 칭찬에 부끄러워,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하지만 기분만큼은 하늘을 찔렀다. 나는 지난 3년간, 자의 반 타의 반의 병원 생활을 청산하고, 눈을 대폭 낮춘 뒤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그리고 육 개월 동안 누구보다 성실히 일했다.   

   

누가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나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나와 사무실을 정리·정돈하였고, 가장 늦게 퇴근하였으며, 항상 밝은 미소와 적극적인 태도로 상사와 동료들을 대했다. 업무도 빨리 배웠고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사회에서 초년생이 사랑받기 위한 행동이 무엇인지를 잘 꿰고 있었다. 아버지는 늘 입버릇처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랑받는 사람의 귀는 아무리 낮은 소리도 들리기 마련이란다.”     


나는 바로 그 소리를 듣고자 노력했다.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그 칭찬을.      


밤 11시가 가까워져 오지만 전철 내 승객은 많은 편이었다. 나는 영등포구청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신도림역으로 가는 중이다. 마침 내가 선 곳에 자리가 났다. 나는 본능적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노약자나 임산부를 찾았다. 모두 젊은이들 뿐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휴대폰 세상에 푹 빠져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좌석에 앉았다.      


나의 옆에는 생머리를 귀신처럼 길게 앞으로 늘어뜨리고 선잠이 든 듯한 여인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잠시 그녀를 훔쳐보며 얼굴 옆 라인이 예쁘다고 느꼈다. 화장품 냄새도 좋았다. 나는 코를 벌름거리며 그녀의 향을 본능적으로 공유하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오랫동안 억눌렀던 생물학적 본능이 용솟음쳤다.      


‘아,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만져 봤으면….’     


하지만 어디까지나 생각이었다. 남녀 간의 신체 접촉에 무척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우리 사회에서 나는 어떻게 대처하여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나는 무관심한 듯 고개를 내리고 나의 휴대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리는 전철의 흔들거림에 따라 상하좌우로 건들거렸다. 그러다 조금씩 조금씩 나의 어깨 쪽으로 그녀의 머리가 기울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나의 어깨에 닿고 말았다. 나는 그녀의 머리 무게가 차츰차츰 무거워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완전히 잠에 빠진 것 같았다.      


누가 보면 다정한 연인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의 머리에서는 특유의 쉰내가 올라왔다. 나는 고개를 돌린 채, 나의 어깨를 살짝 올려 그녀의 머리를 반대 방향으로 유도해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나는 그 상태로 꼼짝없이 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뭐, 싫지는 않았다.      


이윽고 신도림역이 가까워졌다. 많은 승객이 하차하려고 출입구 주변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앉은 자리 바로 옆이 출입구였으므로 내 주위에 많은 승객이 몰려들었다. 나도 이곳에서 내리기 위해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나의 어깨를 점령한 그녀는 세상모른 채 잠들었고 만약 내가 그냥 일어선다면 그녀는 속절없이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되면 갑자기 잠에서 깬 그녀는 잠시 당황한 모습을 보일 것이고, 이 장면을 지켜본 승객 중 몇 명은 웃을지도 몰라. 그러면 이 가여운 여인은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도 없겠지….’     


나는 이 여인에 대해 안타까운 상상을 이어가며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곧 내려야 하는데…. 어떡하지?’     


할 수 없이 나는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그녀의 머리를 살살 밀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전철이 덜컥거리며 쇳소리를 내더니 속도가 대폭 줄기 시작했다. 차 안의 모든 승객이 순간 휘청거렸다. 그리고 뒤이어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어딜 만지는 거예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소리 나는 곳으로 향했다. 내 옆 여인이었다. 그녀는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손가락 두 개를 꽉 거머쥐고 있었다. 마치 범죄 현장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 형사처럼 그 모습이 결연해 보였다. 그 순간, 몇몇 승객이 잽싸게 그들의 휴대폰으로 나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는 말을 더듬었다.     


“제 제 제가 뭘?”     


그때, 지하철이 멈추었다.  

   

“왜 이 손가락 두 개가 내 가슴에 있는 거예요?”     


그녀는 나의 손가락을 주변 사람에게 보란 듯이 들어 보이며 내게 따졌다.    

 

“무 무슨 소리예요? 가 가슴에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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