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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Feb 21. 2024

흥민 빌라 404 #1

아침이 오면

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찬란한 빛. 밝음. 아침이 오는가 보다. 좋은 일이지. 빛은 항상 우리에게 뭐랄까? 희망, 긍정, 행복 같은 거를 주는 거잖아? 그렇지?      

하지만 나는 솔직히 어둠을 좋아해. 왜냐고? 이유는 모르겠어. 그냥 그런 거야. 그렇게 태어난 거야. 마치 박쥐나 올빼미처럼. 그냥 어둠에 익숙해. 하지만 그렇다고 아침을 원망하지는 않아. 왜냐하면…. 아침이 와야 사람들이 깨어나 움직일 거고 그래야 거리가 부산해질 거고 그래야 그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생기거든.      

그럼 너의 취미는 <사람 보기> 인 거야?     

그렇지. 사람 보기. 유심히 관찰하기. 유럽의 늙은이들이 히틀러 시절부터 하고 있다는 그 행위 있잖아. 베란다에서 멍 때리며, 혹은 에스프레소 한 모금 홀짝이며, 오가는 인간과 차와 말, 자전거와 유모차를 유심히 살피는 것. 그들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거야. 나의 일상 말이야. 시간 보내기에 이만한 것이 없지. 나의 시간은 너도 잘 알잖아? 그냥 영원이야. 끝이 없지.     

그럼 종일 집에만 있는 거야?     

그렇지. 온종일 집에만 콕 틀어박혀 있지. 그래서 빛이 싫지만 반기는 거야. 은둔형 외톨이라고 해서 사람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은 아니거든. 원래 생명체는 태어나면서부터 만남과 이별, 증오와 그리움, 끌림과 반목을 교차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으니까…. 나도 그런 거지. 벗어날 수가 없지. 다만 직접 사람을 만나는 것을 싫어할 뿐이지. 즉 머릿속으로만 만나는 거야. 상상이지.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이런 거야.      

어느 날 아침, 베란다에서, 지나가는 여학생을 봤지. 그녀는 어리고 여리고 가냘프고 청순해 보였어. 마치 내 첫사랑을 보는 것 같았어. 청순미의 끝판왕. 내 가슴의 영원한 낙인. 그녀는 급히 골목을 뛰어가더군. 나는 그녀를 불러 세우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않았어. 사실 그런 충동을 지금까지 많이 느꼈지만 한 번도 불러 본 적은 없어. 내가 얘기했잖아. 나는 직접 만나는 것은 싫어한다고.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고? 뭐, 그야 뻔하지. 그냥 상상하는 거지. 그녀의 삶. 그녀의 인생. 그녀의 고난과 행복, 그녀의 비밀과 세상에 드러남. 그녀의 과거와 현재, 미래 등등. 그래, 나는 늘 이런 식이지. 늘 숨어서 사람들을 관찰해. 마치 CCTV 같은 존재지. 따분하지 않냐고? 뭐, 따분할 때도 있고 재밌을 때도 가끔은 있어. 하지만 이젠 익숙해. 이렇게 지낸 지가 꽤 됐거든. 음…. 그러니까…. 대략 3년 정도 되었구나. 우리 흥민 빌라가 리모델링 한 게 딱 3년 되었으니까.      

그럼, 여기서 3년 산 거야?     

아냐. 일 년 더 살았어. 그러니까 나는 총 4년 살았지. 그전에는 어디에 있었냐고? 음…. 너에게 말하기는 좀 뭐한데…. 사실 여기로 오기 전에 감옥에 잠깐 있다가 나왔어.      

감옥에? 몇 년 동안? 왜?      

하나씩 물어봐. 대답하기 헷갈리잖아. 얼마 안 돼. 3년 선고받았는데 1년 반 만에 특사로 풀려났어. 운이 좋았지. 대통령 보궐 선거가 있었거든. 이전 대통령이 끼리끼리 꽤 많이 해 먹었는가 봐. 무슨 말인지 알지? 안 좋은 쪽으로…. 그러니 사람들이 그렇게 들고일어났겠지? 지구를 떠나라고. 아무튼 나는 그 덕분에 자유의 몸이 되었지.      

죄목이 뭐냐고? 음…. 그게 그러니까…. 너에게 사실 말하기가 무척 쑥스러운데…. 그게…. 그러니까…. 성범죄야. 강간미수. 미안해. 너가 실망할 줄 알았어. 하지만 조금 억울한 면이 좀 있긴 있어. 그래. 사실이야. 강간하려고 했지만, 마지막에 꾹 참았거든. 정말이야. 초인적인 힘으로 나의 충동을 억제했어. 즉, 나의 이성이 강했던 거야. 혹은 미래에 펼쳐질 고난을 두려워했던가…. 아무튼 내게도 약간의 선한 면 혹은 약한 면 혹은 다르게 생각하는 강한 면 이 있다는 뜻이지.     

무슨 말이야? 지금 횡설수설하는 것 같은데?      

미안해. 과거 이야기는 늘 불편해서 그런 거야. 알잖아? 떨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껌딱지처럼 사방에 붙어 다닌다는 거.     

아무튼,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녀를 돌려보냈지. 그리고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운전대를 다시 잡았지. 택시 운전을 했거든. 야간에만. 내가 얘기했잖아. 나는 어둠을 좋아한다고.      

그런데 어떻게 잡혔냐고? 당연히 그녀가 신고했으니까 잡혔지. 나는 신고 안 할 줄 알았는데 보기보다 무척 악랄한 여자였어. 그래 그녀는 틀림없이 악녀였어.      

악녀라고? 그녀는 강간당한 거잖아? 아니 강간당할 뻔한 거잖아? 그런데 왜 악녀라고?     

그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그러니까…. 음…. 그녀가 먼저 유혹했거든. 내 말은 사실이야.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그녀가 어떤 상태로 내 차에 탔고 어떤 말을 했고 어떻게 그녀의 젖가슴을 내게 들이밀었는지. 그러니 나는 억울하다고 하는 거야. 정말이지 그녀의 술수에 넘어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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