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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Feb 21. 2024

흥민 빌라 404 #4

어두운 이야기

자, 이제 나의 어두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해. 궁금하지?      

내가 어쩌다가 빛보다 어둠, 평온함보다 분탕함, 행복보다 고통, 희망 보다 절망, 정직보다 거짓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지. 어쩌다가 평범하기 그지없었던, 아니지, 그 평범보다 더 한심했던 내가 이런 추악한 인간으로 낙인찍혔는지….     

하지만 그에 앞서 잠깐…. 헤헤헤…. 그래, 미안해. 나에 대해서…. 즉, 나의 배경에 대해서 나의 경력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지. 미안해. 하지만 이 부분도 꽤 재미있으니까…. 너무 조급하게 다그치지는 마. 알겠지. 자, 그럼 시작한다.     

나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어. 비록 지방이지만 꽤 명문 있는 국립대였으므로 걱정한 것보다는 쉽게 직장을 잡을 수 있었지. 아, 물론 대기업은 아니야. 사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이력서를 내지 않은 것은 아니야. 그리고 일차 서류전형에서는 모두 합격했지. 왜냐하면 내 학업성적이 아주 좋았거든.      

내 자랑은 아니지만, 소싯적 고향에서 신동으로 이름을 꽤 날렸거든…. 물론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하지만 문제는 면접이었어. 내가 그랬잖아. 말더듬이라고. 그래 그게 나의 첫 사회생활 진출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지. 아니 어찌 보면 내 인생을 갉아먹은 가장 큰 장애였어. 학창 시절 항상 불안했거든. 특히 고등학교 중학교 때. 발표 시간 말이야. 혹은 일어서서 교과서 읽기 같은 거 말이야. 늘 불안에 떨었지. 그리고 실제로 딱 한 번이지만 그 고통을 몸소 겪기도 하였지.      

지금 생각해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려. 정말이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어. 국어 시간이었는데, 그때가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 국어 선생이 나를 지목하며 읽기를 시킨 거야. 나는 하늘이 노래지는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가 하얗게 텅 빈 상태에서 한 줄의 문장을 마치 무한 테이프를 틀어놓은 듯 계속해서 반복했지.     

그 그 그 그 그러니까 까 까 까 까 나 나 나 나 나 나 는 어 어 어 어….     

교실에 정적이 흘렀어. 하지만 그 정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정적이 절대 아니지. 모든 친구. 그래 내 친구들. 매일, 같이 수업받고 밥 먹고 함께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그 친구들이 모두 하나같이 웃음을 참기 위해 극한의 입 틀어막음을 애쓰는 그런 정적이었지. 그러다 결국 한 녀석이 터졌지. 절대 참을 수 없는 웃음. 그러자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함께 터져 나온 거야. 그래 그 웃음. 그래, 그건 절대로 다른 이들은 경험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이지. 나는 그 순간, 정말이지 죽고 싶었어. 만약 학교 옆이 마포대교였다면 정말로 뛰어들었을 거야. 퐁당.     

그런데 정말로 나를 화나게 하고 미치고 폴짝 뛰게 하는 게 뭔 줄 알아? 하 참!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그러니까 내가 성희롱 죄로 첫 재판을 받던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지. 나를 맡은 국선변호사가 말더듬이였던 거 있지! 하! 참! 내! 아니 어떻게 말더듬이가 변호사를 할 생각을 한 거지? 말로 벌어먹는 직업이잖아! 톰 크루즈 주연의 <어퓨굿맨> 영화도 안 본 거야? 수려한 말로 악당을 골로 보내는 그 통쾌한 장면 말이야!      

만약 톰 크루즈가 말더듬이였다고 가상해봐! 어떻게 되겠어? 아마 그해 최고의 코미디 영화가 되었겠지. 그래, 그런 거야. 나는 도저히 꿈도 꿀 수 없는 직업을 나의 변호사가 얼굴 두껍게 하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정말로 나를 화나게 한 것은 따로 있었어. 그가 말더듬이였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어. 뭔지 모르겠지?     

바로 그건, 그가 변론을 막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그가 더듬더듬하며 나를 변호하는 그 순간, 모든 이가 웃음을 참고 있는 그때, 빵하고 첫 번째로 웃음을 터트린 게 바로 나라는 거야. 그래. 바로 그거야. 최소한 나는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 나는 우리 변호사의 고통, 절망, 공포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아파하는 같은 부류잖아. 그런데 내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가장 먼저 터진 거지.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했지. 판사는 내가 죄를 전혀 뉘우치지 않았다고 본 거야. 가중처벌. 괘씸죄. 법이 허용한 모든 형량을 꽉 꽉 채우고 말았지.      

아! 하! 하! 하! 그렇지 이 얘기는 조금 뒤 나중에 자세하게 알려 주도록 하지. 그래, 지금은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니었지. 마저. 내가 막 입사한 그때로 돌아가도록 하지. 아무튼 나는 대기업 면접을 모두 회피하고…. 그래, 마저, 나는 회피했어. 나도 그 말더듬이 변호사처럼 세상의 비웃음과 맞서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했지. 비굴한 내 인생. 결국 단체 면접을 하는 대기업에는 모두 가지 않았어.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아주 조그마한 스타트업 회사였어.      

사장과 개발자 네다섯 명. 경리 여직원 한 명. 나는 온라인 노래방 개발을 맡았지. 즉, 나의 직업은 프로그래머지. 내가 그랬지? 나는 천재라고. 그래, 확실히 머리 쓰는 쪽으로 다른 이보다 월등히 뛰어난 건 사실이야. 나의 부실한 구강 구조가 나의 뛰어난 머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적절히 표현을 잘 못 하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야.     

내가 얼마나 뛰어났냐고?     

일례로 바둑을 들 수 있지. 나는 바둑책 몇 권 읽고, 실전 경험, 한 두어 달 하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마추어 초단으로 인정을 받았어. 대단하지? 만약 내가 10살 때부터 바둑을 시작했다면 아마 이런 제목의 신문 기사가 실렸을 수도 있었을 거야.      

<스승 이창호를 뛰어넘은 세계 최고의 기사 조필호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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