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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Feb 29. 2024

장미와 이빨 #1

1. 세니라고 불리는 남자

“박사님? 제3차 세계대전에 어떤 무기가 주로 쓰일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제3차 세계대전에서 어떤 무기가 쓰일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4차 세계대전에 어떤 무기가 쓰일지는 알 것 같군요.”     
“뭔가요?”      
“제 물리적인 생각으로 따져보자면…. 아마…. 돌멩이나 나무 막대기가 쓰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949년 리버럴 유대주의(Liberal Judaism) 잡지의 기자, 알프레드 웨이너와의 인터뷰에서 -     


베이겐 슈파 튼 로드로 진입하는 과정은 꽤 번거로웠다. 도회적 회상은 사라졌고, 폐허 적 잔여물만 도시를 가득 채웠다. 일찍이 우연의 미학을 추구하던, 난더슨 하세트가 극찬을 서슴지 않았던, 그 시절의 그 신비주의적 오묘한 자태는 온데간데없다는 뜻이다. 결국 형상화가 바뀌니 그 속을 채우던 온갖 것들의 생물체 또한 자태를 변화시켰다. 움직이는 모든 것은, 추하고 탐욕스럽고 눈에 살기를 품고 가슴에 응어리진 고통을 늘 어딘가에 신탁하는 꼬라지였다. 그러므로 내가 이 도시에 오기 전, 나머지 다섯 군데의 위성 도시에서 만난, 광대들의 풍자극 소재로 이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의 삶에서 그 도도한 치켜세움이 낯선 외관으로 무너진 현재. 심리적 도치가 저변으로 뻗은, 내가 운전하는 라인 사이로 FI 사의 매직 시리즈 – 그것들은 늘 지나치게 가볍다고 느낀다 - 가 줄기차게 도로를 점령한 상태였다. 즉, 프로펠러와 로터가 쌍으로 이루어 내는 소음은 심장을 울리고, 여전히 들어도 생경한 기계음으로 전파되어 나가는 것으로,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우리가 세 번째 세계대전 혹은 마지막 대 전쟁이라고 불리던 것에서 30년이 지난 후의 세상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정말이지 이 모든 것이 인간의 굳건한 혹은 간악한 의지의 상징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채곤 하였다.     


방금 내 뒤통수를 가르는, 지독하게 낮은 저음의 대형 멀티콥터가 지나갔다. 저 모형의 시조는 이미 1,000년 전의 라이언 모스를 대공사격 무인 전투용으로 개조하면서 비롯된 – 나의 귀여운 엘바- 내가 10살 때 갖고 놀았던 AI 인형 -는 그것을 킵(Keep)이라고 불렀다. - 이후, 무인기와 드론, AI가 마침내 서로의 필요와 조화를 구축하며 결과를 내면서 시작된 무인 전쟁 – 기독교인은 마침내 아마겟돈이라고 하기도 함 – 이 모두 103개 국가의 소멸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 일. 즉, 대전쟁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끝이 나긴 났지만, 생존자들의 입에서 나온 저주는, 이미 호모 사피엔스의 몰락을 정해준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전개로 흘렀고, 이는 내가 확보한 예언서를 정확하게 답습하는 수준으로, 정확한 거였다. 그러므로 삶은 지독하게 간소화되었다. 당연한 순서다. 생존. 살아남은 10억의 인류가 다시 1억으로 쪼그라드는 데는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은 그들의 인생 또한, 재건의 고통으로 다 소진하고 말았다. 날씨가 궂건 좋건, 춥건 덥건 그들은 절망이라는 무진장한 공간에서 허우적대다 이른 생을 마감했다. 미궁에서 탈출한 것은, 그러므로 순전히 내 아버지 세대의 희생과 도움 때문이며, 그 혜택으로 번진 그나마 내가 살 수 있는 이 환경의 측면으로 본다면 나는 틀림없이 행운아임은 분명하다.      


나는 천천히 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푸른 먼지가 사방을 할퀴는 모습 속에서 나는 나란히 파킹 영역에 숨을 죽인 채 채워져 있는 데카콥터와 도데카콥터을 쳐다봤다. 건물은 낯설고 주변은 생소하다. 인공위성이 우주 쓰레기를 제거하고 다시 복귀하면서 나의 내비게이션이 살아나면서 나는 다시 길치가 되고 말았다. 이 도시에서, 아무리 멀리까지 날아도, 파괴된 채 흉물스럽게 구역과 거리를 채우는 초고층 빌딩에 대하여 아무리 내가 잘 알게 되어도, 나는 내비게이션 없이는 언제나 길의 상실감 속에 당혹감과 혼란을 겪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나아가 이곳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단체, – 그것을 국가라고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국가는 사라졌다. 이미 – 내가 스스로 나의 마음속으로 규정하였던 그 어떤 소속에서조차도, 나는 마치 불안의 자국을 뒤에 남겨 두는 느낌이었고, 공간을 온통 덮고 있는 AI 드론이 어쩌면 다시 희망을 자극하고 미래의 안락한 평화 혹은 공존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여도, 나 자신은 여전히 궁극적인 절망으로 단정하고, 그런 심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강박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도시라는 관념은 나의 밖, 주위, 앞, 뒤 모두에게 해당하는 운명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다가서므로 나타날 때 느끼게 되는 그 발전의 빠름은 내가, 우리의 역사가 자행한 그 사악한 폭력의 단절을 속단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것을 조장하는 것으로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심리적 불안감은 <살아남은 자의 후손>이 당연히 겪어야만 하는 트라우마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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