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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Nee Jan 03. 2022

21년 5월 <언더 더 실버레이크>

음향과 음악 사용 위주로 끄적거림

20210521

<언더 더 실버레이크> ( 2019, 데이비드 로버트 미첼 감독)

<언더 더 실버레이크> 영화의 음향과 음악 콘셉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세계관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히치콕 감독의 ‘이창’과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비롯한 다수의 할리우드 영화를 비꼬듯이 따오고, 비슷한 시기의 TV프로그램들을 배경으로 쓰면서, 커트 코베인의 음악과 우리가  믿어온 예술과 꿈이 자본주의 세력들의 농간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를 하는 듯 하다.


다만, 저 20대 초반의 찌질한 남성 주인공을 내세워 이야기하는 것이 북미 남성 관객들에게는 설득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진짜 이질감이 들어 끝까지 보기가 내내 힘들었다.  그런데 심지어 두 번이나 봐야만 하는 상황이 왔다. 영화의 15~20분 지점에서 내가 예전에 극장 개봉관에서 봤었음을 기억해 냈다. 그 때도 얼마나 욕을 하고 나왔던지, 한 시간이나 차를 몰고 가서 어렵게 봤었는데..

영화 톤과 너무나 다른 주인공 이미지 포스터

# 전반적으로 현장음을 최소화하고, 주인공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 사운드 디자인을 추구함.

<언더  실버레이크> 음향과 사운드는 기본적으로 현실 세계를 벗어인상이다. , 리얼리즘을 추구하기보다 사운드의 비현실성을 추구한다.


시작부터 팝송 같은 음악이 나오면서 초반 5분까지  영화의 사운드는 철저히 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는  초점을 맞춘다. 환상 속에 빠져 사는 남자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남자의 취미가 쌍안경을 쓰고 남의 집을 염탐하는 ‘이창 주인공과 같아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를 말하는 메타영화이기도 하다.


#  당대 유행한 음악들을 중심으로 전체 컨셉을 갖춤.   

상당히 익숙한 과거 노래들을 디제시스 안에 배치한다. 카페나 술집, 파티, 클럽 등 디제시스 안에 당연히 존재하는 노래들이 영화의 BGM이 된다. 이는 다시 작품의 주제가 된다.

이렇게 ‘우리 도처에 깔린 음악( 예술, 문화)이 사실은 자본주의 탐욕의 다른 이름이다’라고.


사실  영화가 음악을 과잉되게 사용한 인상이 있으나, 만약  음악이 없었다면,  주인공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관객에게 고문이 되었을 것이다. 음악과 음향이 현실감을 축소시켜줘서 그나마  남자를 봐야만 하는 피곤한 감정을 중화시켜 주고 있다.


# 그림과 사운드의 불일치에 관하여.   

초반에 레이븐스의 실종사건을 발표하는 뉴스 화면에 겹쳐진 사운드는 두 남녀의 건조한 섹스 소리이다. 이는 TV 속 장면을 진지하게 보지 못하게 하고, 희화화 시킨다.

하지만, 그보다 이 영화 플롯을 토대로 역으로 되짚어보면 실종된 레이븐스를 찾아가는 주인공의 동기가 모두 섹스와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장치로 볼 수도 있다.


주인공이 꿈을 꿀 때, 여성의 목소리가 개 짖는 소리로 들린다. 이는 여성들이 일반적인 사람이 아님을 암시하는 동시에 개와 연관이 있음을 알리는 힌트이다. 사실 이런 장치는 섹시한 여성을 취하고 싶으나 능력이 안되는 찌질한 주인공이 그 여성을 마녀로 치환하여 위안을 느낄 수 있는 마녀 환타지의 컨벤션이기도 하다.


# 엔딩 음악과 관련하여   

영화의 엔딩곡을 왜 REM의 음악으로 했을까? 사실 이 음악을 듣는 순간 내가 가진 논리가 순간적으로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음악이 나온 저 시대에 나 역시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였고, 주인공이  커트 코베인을 대한 것처럼, 나 역시 REM의 음악을 숭배했던 기억이 있기에 한 방 먹은 듯 했다.



결론적으로,

내가 이 영화의 주인공 캐릭터에 이입이 되지 않아 보기 힘들었고, 영화의 젠더적 감수성에 피곤함을 느꼈지만, 작가가 자신의 세계관을 시청각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에는 존경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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