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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피해야만 한다.

공습경보가 울렸을 때, 나는 20층에 있었다

by 이워너

당신이 사는 고층아파트는 생각보다 튼튼하고 며칠 버틸 수 있는 식량과 물자도 있다. 핵공격과 생화학 공격에서도 어쩌면 기대보다 안전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히려 대피하지 않고 집에서 버티는 것도 방법은 아닐까?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된다면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물, 전기, 연료가 끊임없이 공급된다든지, 모든 공습상황을 극복하고 당신의 집 유리창이 건재해서 기상 조건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든지.


하지만 장담컨대, 공습상황이 끝났을 때 언급한 전제 중 상당 부분은 불능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전력 공급이 중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전력이 끊겼다면 나머지도 끊어졌다고 봐야 한다. 전력이 없다면 고층 아파트로 물을 보내는 펌프도 작동되지 않는다. 펌프가 고장 나면 고층아파트의 위생문제는 며칠 이내에 중세시대로 돌아간다. 가스공급은 더더욱 없다. 평상시라면 몇 시간 내에 복구될 도시 인프라이지만, 공습 상황에서는 복구를 할 인력도 자유롭게 활동이 불가능하다. 당신의 아파트는 고층에 매달린 사막이 된다.


따라서 눈앞에 닥친 공습의 위험이 끝나면 정부의 지에 따라 최대한 대피를 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다행히도 통신이나 방송 체계가 작동한다면 재난주관 방송사나 민방위 경보에 따르면 된다. 하지만 통신 시설이 타격받았거나 핵공격, EMP 공격이 있었을 경우에는 통신조차 먹통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때를 대비해서 평소에도 국민재난안전포털을 통해 대피장소를 확인해 둘 것을 권한다.


갑자기 상황이 닥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가까운 행정기관으로 향하는 것을 추천한다. 주민센터, 구청, 시청에는 각 행정단위 급 민방위 조직이 있다. 그보다 가까운 경찰서, 소방서가 있다면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물론 상황 대처에 다들 정신이 없겠지만 국민 대피 유도 또한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므로 담당하는 분이 최선을 다해 안내해 주실 것이다.


단, 대피할 때에도 주의사항이 있다. 우선 직전에 일어났던 공습 상황이 완전히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해제 방송이 있어야 한다. 비상시 국민행동요령에 따르면 경보의 종류는 경계경보, 공습경보, 화생방경보, 경보해제가 있다. 경계경보나 공습경보는 사이렌으로 알리지만 화생방경보와 경보해제는 음성으로 알린다. 공습이 끝나고 음성 방송이 들린다면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화생방경보라면 창문을 더욱 밀봉하고 경보해제를 기다려야 한다.

경보가 해제되었더라도 대피 시에는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동이 된다 하더라도 엘리베이터의 이용은 자제할 것을 권한다. 전력 인프라 자체의 작동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엘리베이터는 언제든 멈출 수 있다. 평시에도 구조를 위해 최소한 30분 정도는 기다려야 하지만 전시라면 언제 구조될지를 더욱 알 수가 없다. 갇힌 상황에서 다시 공습이 재개된다거나, 화재가 발생한다면 당신의 생명은 체크메이트 상황에 놓인다. 고층 아파트라 하더라도 대피는 비상계단을 이용해야만 한다.

대피할 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화생방 경보 직후라면 2시간 이상 안전한 곳에서 머무른 후에 실외로 나와야 한다. 실외로 나올 때에도 피부 노출은 최소화해야 하며 가정용 방독면이 없다면 마스크라도 착용해야 한다. 낙진에 대비한 모자 착용도 필요하다. 고글이 있다면 그 또한 착용을 추천한다. 화생방 상황이 아니더라도 대기의 질 자체가 나쁜 상황이고 언제 재공습이 이루어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개인 보호구의 착용은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고 보니 이 글은 외부로 대피할 수 없는 경우를 가정으로 시작했다. 그러면 집안에 틀어박힐 방법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보자. 누누이 말하지만 개인의 견해이므로 비상사태에는 정부의 지시에 따르기를 적극 권한다. 이 글은 그렇지 못할 경우의 플랜 B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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