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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강머리 Mar 07. 2016

나의 겨울은 특별했다

겨울에 받은 선물

그리움에 묻혀 그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기까지 보냈던 시간들이 차곡차곡 내 삶에 추억으로 남아있고 햇살좋은 봄날에 이따금 꺼내어 히죽거리며 웃는다.

 내게 겨울은 늘 그렇듯 추위때문에 오는 약간의 긴장과 방학기간의 아이들과 치러야 할 전쟁때문인지 그리 달갑지가 않았다. 이번만은, 이번만은 특별하게..... 다짐하며

그렇게 맞은 겨울을 또 같은 모습으로 맞았다.

 아이들 시험기간과 겹친다는 이유로 함께 하지못했던 김장행사에 처음 참석을 했다.

1년전 양쪽 무릎수술을 한 친정엄마가 자식없는 노인마냥 혼자서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버무리는 일련의 과정을 생각하니 차마 둘수가 없어 오전에 일찍 수업을 끝내고 친정집으로 3시간여를 달렸다.

 노인네, 내가 가서 하겠으니 절대 손대지말고 기다리겠단 다짐을 받고 갔는데 그 새 그 많은 김장의 마무리단계에 다다랐다.

 "이리 가지러 오는게 어디로... 얼굴이라도 볼 수 있으니..."

매년 택배로 보내던 것을 생각하며 가지러 온 것조차 고마워하는 울엄마, 자식김장도 모자라 사돈댁김장까지 맞겨놨으니 은혜를 왠수로 값는 딸년 아닌가?

 90이 다되어가는 시부모님 김장을 해드려야 한다는 푸념을 지나쳐 들으시지 않고 따로 싱겁고 맵지않게 담궈 놓으셨다.

"딸년은 도둑년! " 이라는 옛말 하나 틀린게 없다

 도착하자마자 김치통에 담아 박스에 잘 정돈된 김장을 시댁으로 배달했다. 나의 시댁은 친정집에서 약1시간 남짓되는 거리라, 양가 어디를 가든 꼭 같이 두곳을 들려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따로 시간을 내지않아도 한 번에 찾아뵐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해가 일찍 떨어지는 겨울이라 시댁에 얼른 내려 김치냉장고에 이쁘게 담아내고 나오는데 시엄니의 서웃한 헛기침이 자꾸 발목을 잡는다.

 '이리 곰방 왔다 갈라면 뭘라고 왔노, 하룻밤 자지도 않으면서...'

"어매요. 그게 내가 바빠서......" 변명을 할려는데,

시아부지 얼른 말을 막아나선다.

"얼른 가거라, 김장해온것도 고마운데 저 어매옆에서 하루 자고 가야할거 아이라. 어두워지면 찻길 위험타"

눈을 껌뻑이며 얼른 대문밖으로 밀어내는 시아부지덕에 쫒기듯 시댁을 나왔다.

"아부지 죄송해요, 담엔 자고 갈께요"

서둘러 나왔는데도 겨울의 긴 밤은 벌써 시작되었고 시골길 곳곳에 차에 치어 누운 고양이며 산짐승들 때문에 몇번이고 핸들을 쥔 손이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컴컴하고 드문드문 불빛이 보이는 시골길을 운전하는 것은 늘 긴장된다.

 친정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누웠다가 문득 그녀석이 생각이 났다.

풋사랑에 첫사랑을 끼워서 꽤 오랫동안 생각났던 그녀석도 지금 고향에 내려와 있다는 것이다.

차나 한잔 할 요량으로 까톡을보냈더니 흔쾌히 만남을 허락해 왔다.

아~딱 20년 만이다.

어떻게 얼마나 변했을까?

만나면 어떻게 인사를 해야할지?

악수라도 ...아니면 한 번 안아라도 봐야할까?

이런저런 생각때문에 입던옷 그대로 나왔다.

김치냄새가 베어있는건 아닌지 , 생각지도 않고 녀석을 만났다.

......잠시 흐른 침묵과 동시에

"반갑다 친구야!" 로 말을 트고 둘이서 20년의 공백을 메울만큼 수다스럽고 시시콜콜한 것까지 얘기하며 웃고 울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우린 찻집에서 나온후에도 한참동안 차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제서야 악수도하고 그때가 아닌 지금의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새벽2시 미쳤다, 미쳤어.

부랴부랴 친정집으로 돌아온 후 한숨도 잠을 잘수가 없었다. 20년만의 과거가 어제로 돌아온듯 했다.

  휴일 오후라 미어터지게 밀리는 고속도로가 오히려 고마울정도로 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맘에 짐을올렸다,내렸다를 반복하며 ...긴시간 내내 맘이 복잡했다. 며칠동안 내게는 1996년 그 겨울이었다.

 한참만에 일상으로 돌아와 특별한 겨울을 보내고, 이젠 20년만의 해후를 기분좋은 기억으로 꺼내본다.

꽃피는 춘삼월에 받을 설렘과 두근거림의 선물을 미리 받아서 맘에 불어올 봄바람이 벌써 저만치 달아났다.

나의 겨울은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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