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표의 독서 일기
극한의 경험,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옥당, 2019년 12월 30일 ~ 2020년 1월 2일
전쟁이라는 단어가 주는 중압감이 나를 크게 짓눌렀던 적은 없었다. 유일한 분단국가에 살면서도, 제대를 2달 남기고 북한에서 핵실험을 했을 때도, 그리고 제대 10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북한과 한국, 미국간의 줄다리기에도 전쟁은 그저 저 먼 나라의 이야기, 혹은 영화 속 주요 소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쟁이 일상이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전쟁의 기운이 휘감고 있는 곳이 있다. 중동. 이스라엘 출신인 유발 하라리에게 전쟁은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더 일상적이었고 보편적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역사학자인 그에게 전쟁이라는 분야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유발 하라리는 수없이 많은 전쟁 회고록을 통해 전쟁이라는 극한의 경험이 가져오는 감수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의문을 던진다. 과연 지금의 전쟁 문화를 헤쳐 나갈 길이 있을지. 대부분의 전쟁의 기본이 된 ‘감수성X경험=지식’이라는 공식의 소개하고 그 허술함에 의문을 던지며 끝나는 이 책을 읽으며 수없이 고민했다. 전쟁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전쟁을 하고 있고 해야하는가? 사피엔스란 그런 존재인가? 여러 궁금증이 머리를 스친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데카르트가 장교였고 전쟁 중 사고의 중요성을 깨닫고 철저한 이성주의자가 됐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전쟁통에서 나왔다니, 전쟁통에는 사랑만 싹트는 게 아니었다. 반면 프랑스 군의관 라메트리는 전쟁 중 데카르트와 정반대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이성이 육체를 지배할 수 있다고 본 데카르트와는 달리 라메트리는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는, 즉 기계론적 사고의 씨앗을 뿌렸다. 같은 전쟁이지만 바라보는 관점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 세상은 데카르트의 편을 든 거 같지만 전쟁에 있어서만큼은 라메트리가 우월하다는 방증이 바로 그 이후 나온 낭만주의적 전쟁문화이다.
참 재미있다. 사피엔스에서 호모 데우스로, 그리고 극한의 경험으로 이뤄지는 유발 하라리의 엄청나고 방대한 지식체계와 상상력에 두손 두발 다 들었다. 그저 그의 책 속 글자를 따라갈 뿐이다.
매부가 선물해줬다. 덕분에 아주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