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대표의 좌충우돌 사업일기 - 1월 15일 수요일
오랜만에 방송국에 갔다. 일하러 갔냐고? 나 방송인 출신이다. 일하던 방송국에 좋아하는 형님과 밥을 먹으러 갔다.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일할 때 나를 제일 혼냈던 PD 선배. 작년 초 선배와 술자리를 갖고 그 자리에서 호형호제하자고 하셔서 이젠 선배에서 형님이 된 사람 B. 나를 제일 많이 혼냈지만 방송국의 선배들 중 나에 대한 호(好)의 마음이 가장 많이 느껴졌던 분이고, 나 역시 많이 혼나긴 했지만 그게 다 나 잘 되라고 한 거라는 거 정도는 아는 눈치 있는 놈이기에 방송국에서 퇴사할 때 형님을 자주 못 보게 됐다는 것이 가장 안타까웠다. 퇴사하고도 한 달에 한 두 번은 와서 발성과 톤을 봐주셨던 분이었고, 그에게 갖는 고마움은 진부한 클리셰이지만 망망대해만큼이나 컸다. 퇴사하고 반년 정도는 매달 방송국에서 시간을 가졌던 관계가 내가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서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로 횟수가 줄었고, “조만간 찾아뵐게요”라는 공허한 외침만이 카톡 창에 난무하게 되었다. 그래도 찾아뵐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었던 형님. 오랜만에 B형과 밥을 먹으러 수원에 있는 방송국에 갔다.
메뉴는 부대찌개. 찬이 차려지기 무섭게 우리 이야기의 주제는 내 이야기로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의 만남이 지난 해 2월이었고, 그 때 우리는 B형이 소개시켜줘서 같이 일도 하게 됐던 H형(나보다는 형이고, B보다는 동생이다)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수많은 대화가 오고갔던 그 날, 역시 주제는 내 이야기를 안주로 술상이 차려졌고, 그 당시 나는 루네의 두 번째 싱글 ‘아이(I)’를 발매하기 직전이었다. H형은 매니지먼트 회사를 운영하면서 이미 꽤 큰 인지도를 갖게 된 형이었고, B형 역시 방송국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기에 나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폭탄주처럼 말아 주었다. 수많은 이야기의 끝은 “일 년을 우리 도움 없이 버티고 와 봐”였다. 사실 둘의 도움이라면 회사가 금방 클 수도 있었기에 동생으로서 조금 서운한 마음도 있었지만, 또 내가 일 년 멋지게 버티고 와서 이 둘에게 뭔가 보여주리라 라는 막내의 객기어린 포부도 있었다. 그로부터 난 일 년을 오롯이 버텼고, 오늘 근 일 년 만에 B형을 만났다.
그 동안 있었던 일들 중 괜찮고 좋은 일들은 나름 자랑 삼아 칭찬을 기대하며 말했고, 힘든 일들은 포장지를 꼭꼭 싸매 덜 힘든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역시 B형은 베테랑이었다. 그는 내가 괜찮고 좋다고 느꼈던 일들이 실은 그렇게 괜찮지 않은 것이며 심하면 허상일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내가 꼭꼭 싸맨 나의 힘듦을 쉽게 파악하고, 상처를 후벼 파듯 그 힘듦을 파헤쳤다. 결국 그 앞에선 난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였고, 종결의 방향이 가리킨 곳은 혼남이었다. 하지만 그가 말한 대부분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혼남이 사실 좋았다. 그는 내가 정말 잘 되길 바라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실 1년을 버텼지만 사업은, 특히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잘 모르겠다. 잘하고 있다, 못하고 있다의 판단 근거를 내릴 수 없을 정도로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래서 진짜 그냥 글자 그대로 버티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난 여전히 로맨티스트였고, 냉정하지 못하고 있음을 형 앞에서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B형이 말해주는 내용들이 아프지만 큰 도움이 된다. 날 조금은 냉철하게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에. 만날 때 마다 혼나지만 그게 좋다. 앞으로도 그 앞에서 난 계속 혼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