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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남하이 김대표 Mar 06. 2020

할아버지의 이쑤시개

감성 에세이

  아버지가 가지고 온 한우를 함께 구워먹었다. 몇 점 먹고 나니 어느새 어금니에 고기 힘줄이 꼈다. 한해 한해 지날수록 이 사이가 조금씩 벌어지나보다. 부쩍 자주 낀다. 문득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고기를 좋아하셨던 할아버지. 고기를 드시고 나면 늘 이쑤시개를 찾던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폐암으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후 거의 매주 할아버지를 뵈러 갔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병명을 모르고 있었고, 단순한 독감인 줄 아셨다. 그저 지독한 감기가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셨다. 그러면서 이렇게 몸이 허하고 아플수록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고 하셨다. 건강할 때도 고기 사랑이 자자하셨던 할아버지는 자신의 건강했던 육신의 원동력이 마치 고기라고 여기며 아버지가 갈 때는 보신탕을, 손자가 갈 때는 갈비탕을 메뉴로 선택하셨다. 갈비탕 속 서 너 대 들어있는 뼈를 잡으며 맛있게 고기를 뜯던 할아버지는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자 몸이 약해져서 뼈에 붙은 고기를 가위로 썰어드려야 드실 수 있게 되었고, 뜨거운 여름이 다해가자 먹기 좋게 잘려진 고기 몇 점마저도 남기시기 일쑤였다. 그래도 변함없는 모습이 있었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문을 나설 때에도, 손자와 며느리의 부축으로 간신히 발을 옮기실 때도 할아버지의 입에는 이쑤시개가 물려있었다.


  사실 할아버지만은 아니었다. 갈비탕에 들어있는 고기는 꽤 질겨서 먹을 때마다 이 사이에 고기 살점 혹은 힘줄이 꼈고, 시간의 장력에 의해 이 사이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한 삼십 대 손자도, 이순에 들어서 늘 이쑤시개를 파우치에 가지고 다니는 며느리도, 시한부 선고를 받고 생의 마감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고 있는, 틀니를 낀 할아버지도 모두 이쑤시개 하나씩 들고 이 사이에 낀 죽은 소의 흔적을 벗겨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점점 무너지는 육신의 한계를 이겨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쑤시개로 이에 박힌 고기를 벗겨내듯 폐암에게 맞섰고, 결과가 정해진 싸움에서 신라에 맞선 백제의 계백장군처럼 생각보다 길게 버티셨다. 최대 육 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는 의사도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길어졌고, 결국 해를 넘기신 할아버지는 선고를 받은 달과 같은 숫자의 달에 잠을 곤히 주무시다가 힘들지 않게 돌아가셨다. 정말 할아버지의 말처럼 갈비탕 속 고기 몇 점이 할아버지의 힘이 되었던 걸까? 어쩌면 할아버지는 이 사이에 낀 고기의 흔적을 벗기는 과정을 통해서 삶의 의지를 붙잡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력이 거의 다 해 식사를 다 남기시다시피 할 때에도 이쑤시개만큼은 꼭 챙기셨는지도 모른다.


  한우를 다 먹고 나서 이쑤시개를 가지러 갔다. 아버지는 아직 나이도 어린 녀석이 벌써 이를 쑤시면 안 된다며 타박을 하신다. 씩 웃었다. 사실 이 사이에 낀 힘줄은 혀를 살짝 어금니에 가져가서 돌려도 빠질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도도 하지 않고 이쑤시개를 가지러 갔다. 지난 해 내내 매주 내 앞에서 이를 쑤시던 할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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