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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남하이 김대표 Mar 29. 2020

출발이 좋다

초보 대표의 좌충우돌 사업 이야기 - 2월 4일 화요일

  가끔 내가 일을 하는 건지 과제를 하고 시험을 보는 건지 헷갈릴 경우가 있다. 특히 우리가 제출한 제안서를 상대가 보고 우리와 함께 할지 안 할지를 결정하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마치 학창시절 시험 점수에 크게 반영이 되는 숙제를 제출하거나 대학교 시험 시간에 빼곡히 글을 쓴 답안지를 교수님께 제출하는 기분마저 든다. 평가 당하는 게 늘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린 아직 신생아인 회사이고 보여준 게 많이 없는 회사니까 사실 평가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거래처가 될지도 모르는 큰 단위의 지자체와의 미팅. 우리는 그 쪽에서 원하는 사업의 제안서를 제출했고, 오늘 그 답을 듣는 날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주차장에 차를 대고 들어간 사무실. 가벼운 인사 후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두 시간에 걸친 긴 이야기. 회의 시간이 길어진다는 건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일을 진행하기로 정해서 실무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느라 오래 걸리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견이 심해 의견 조율을 하느라 오래 걸리는 것. 다행히 전자였다. 사실 우리가 지금 후자일 수가 없지 않는가.


  지자체에서는 우리가 제출한 제안서가 너무나 마음에 든다고 했다. 딱 자기들 스타일이어서 정말 좋다고 했다. 처음엔 입에 발린 소리이지 않을까 의심했다. 하지만 회의 내내 만족한 표정과 좋다는 멘트가 입에 발린 소리만은 아님을 알려줬다. 또 그들이 우리에게 입에 발린 소리를 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우리가 하면 모를까. 회의실이 아주 좋네요. 뭐 이런 거. 몸에 엔돌핀과 아드레날린이 동시에 분출되기 시작했다. 출발이 좋다.


  회의가 끝날 때 쯤 담당 주무관이 말했다. “함께 하시게 되면 5월부터는 정말 바빠지실 거예요.” 난 이 지자체의 노예가 될 수도 있다. 강하게 악수를 나누며 다음 미팅 일정을 잡고 회의실을 나섰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함께 회의에 들어간 Y와 함께 하이파이브를 했다. 신사의 품격 김도진(장동건 님)과 임태산(김수로 님)이 한 것처럼 멋지게 손을 맞추고 싶었지만 역시 이런 건 체질이 아니다. 엇나간 손. 난 김도진이 아니었고, Y는 임태산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린 드라마 속 그들처럼 하나 둘 뭔가를 만들어가고 있다.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사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나가는 예술이나 다름없다. 텅 빈 도화지에 스케치를 하고, 색을 입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는 것처럼, 텅 빈 악보에 악상을 그리고, 정확한 음을 입혀 하나의 훌륭한 음악을 완성하는 것처럼, 텅 빈 원고에 개요를 짜고, 글을 짜 맞춰 하나의 아름다운 글을 완성하는 것처럼 사업 역시 아무 것도 없는 세상에 내가 바라는 가치를 세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그래도 조금씩 무에서 유를 창조해나가고 있다. 앞으로 점점 바빠질 것 같다. 기대가 되는 202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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