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왔으니 지난해의 모든 고통을 잊고 후뤠시한 새 출발을 하고 싶지만 회사가 우리를 그렇게 놔둘 리가. 작년 비즈니스의 최종 성적표가 1월 중순에 발표되면, 담당 업무의 책임자와 직원들은 신랄한 자기 성찰과 앞으로 잘하겠습니다의 쳇바퀴를 바삐 돌린다.
지난주 금요일이 연말 평가서 제출 마감이었다.
나는 이번에 7명을 직접 평가했다. 코리안 1명, 러시안 2명, 더치(네덜란드인) 2명, 터키쉬 1명, 마지막으로 아르젠티니언 1명. (참고로 저의 본업은 한 글로벌 기업의 경영진입니다.)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된다. 하나는 점수. 이 점수가 해당 직원의 연봉 인상과 보너스율의 범위를 결정짓는다. 다른 하나는 상사의 코멘트 (commentary). 지난해 어떤 부분이 좋았고, 개선할 것은 무엇인지 알려주어 직원 성과 개선을 돕는다.
이 두 가지를 놓고 팀의 리더는 두 번의 전투를 겪는다.
첫번째는 점수 매기기. 우리 회사는 각 부서장의 성향으로 인한 과대평가나 과소평가를 줄이기 위해 시니어 직원(디렉터급 이상)에 대한 평가는 부서장들이 모여서 함께 한다. 고평가를 줄 수 있는 총 직원의 수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항시 두 가지를 준비한다. 강력한 증거 (업무 성과)와 확신에 찬 말발. 나는 대체로 승기를 잡는 편인데 간혹 의외의 공격에 무너질 때가 있다.
한 가지는 네트워크. 내가 아무리 치켜세워도 다른 부서장들이 "갸가 누구세요" 하면 바로 데미지다. 디렉터급 이상이 존재감 없이 고립되어 일하는 건 치명적 단점이다.
그리고 평소 태도. 이건 착한 마음씨보다는, 과열된 토론을 할 때에도 얼마나 자기중심을 지키면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 respect를 표현하는가에 달려있다. 결국 회사는 다 같이 모여서 일하는 곳이므로 혼자서만 뾰족한 사람은 대접받지 못한다.
아, 부서 전체의 성과가 좋지 못하면 증거고 말발이고 아무 소용없다. 그저 내년을 기약할 뿐.
두 번째 전투는 코멘트를 작성하기에 앞선 팀 리더의 내적 갈등이다.
이상하게 평소에 잘하다가 꼭 평가 기간에 사고 치는 직원이 있다. 대체 왜 때문에?
아무튼, 나는 이번에 확실한 컨셉을 정했다. (thanks to HBR Guide to "Delivering Effective Feedback") 데리고 갈 직원에게는 한결같은 긍정과 격려. 데리고 가지 않을 직원에게는 잔혹한 현실직시.
이건 흔히 말하는 샌드위치 기법 (좋은 말 - 힘든 말 - 좋은 말)이나, 6 vs 1 (지적 포인트 1개를 위한 6개의 칭찬) 등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인데, 내가 이 극과 극 컨셉을 지지하게 된 이유는 지난 경험에서 온 깨달음 때문이다.
"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결론이 완전 제각각이 될 수 있다. 나는 직원에게 1가지의 개선점을 기분나쁘지 않게 전달했다고 믿고, 직원은 칭찬을 6개나 들었으니 한 가지의 부족함 따윈 대수롭지 않다고, 나름 선방했다고 여기는 식이다. 이 때문에 "당신은 지난 무수한 피드백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개선되지 않아 이제 떠나셔야겠습니다"라고 하면 "나는 그런 피드백을 들은 기억이 없소! 변호사 고용!" 하는 상황이 진짜 생긴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 작정하고 보지 않으면 장점보다 단점이 더 쉽게 보이기도 한다.
나는 2단계로 준비했다.
첫째, 이 직원은 회사 입장에서 데려가야 할 사람인가, 떠나보낼 사람인가. 다행히 7명 모두 회사에 도움이 되는 직원들이라는 결론.
두 번째, 그렇다면 이들의 성장과 성공을 위해 가장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조언은 무엇일까. 같은 말을 '지적 - 너 왜 그랬니'의 앵글이 아니라 '이것만 고치면 더 잘될 거야, 확실해'의 앵글로 전달하는 게 목표다.
아래는 그 결과물의 요약이다. 모든 이름은 가명이고, 나머지는 나의 관점에서 사실에 기반.
직원들은 글로벌 각 지역의 비즈니스 성과 (매출과 이익)를 관리하는 시니어 매니저 - 디렉터들이다.
직원 1. 아르멧. 팀의 최고참. 터키인. 남성. 고속 승진 후 현재 다소 정체기. 의리의 사나이. 중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약간 일을 불투명하게 하는 경향이 있음.
2022년 아르멧의 뛰어는 성과는 12345입니다. 아르멧에게는 ABCDF의 장점이 있습니다. 이 장점을 잘 지속해서 2023년에도 성공하리라 믿습니다. 아르멧의 지속적인 성장과 성공을 위해 다음의 두 가지 기술을 연마할 것을 제안합니다.
1) 문제를 발견한 즉시 관련 임원들에게 보고하기. 실무자들이 알아서 문제해결 방안을 찾을때까지 놔두면 회사의 대응이 늦어지고 문제해결에 더 큰 비용을 지출하게 됩니다.
2) 명확한 커뮤니케이션. 잘 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해서 누가 그 일의 해결에 나서야 하는지 명확히 알려주세요. 회사가 아르멧의 정보를 신뢰하고, 아르멧이 회사의 퍼포먼스 컬처를 키워나가는데 공헌하는 점이 드러날 거예요.
직원 2. 예진. 디렉터 2년 차. 한국인. 여성. 아시아권 문화를 잘 이해하고 숫자에 강함. 자잘한 디테일의 정확도를 따지느라 본인의 역량보다 작은 일에 매달리는 경향. 사람 관계에 지치기도.
2022년 예진의 성과는 12345... 장점은 ABCDE.. 지속해 나가세요. 잘 될 겁니다.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
1) 업무를 잠시 멈추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기. 일을 자잘하게 많이 하는 것 보다 표면적인 정보들 아래에 자리한 고질적인 문제나 프로세스의 한계를 발견해서 개선시키는 것이 더 큰 업무 성과를 가져다줄 겁니다. 레버리지가 높은 일 (인풋 대비 아웃풋이 큰 일)을 우선시해보세요.
2) 본인 자신과 "해야 하는 일"을 분리하는 연습. 업무상 갈등을 정면으로 대면하세요. 업무와 사람에 대한 배려가 뒤섞이면 자칫 모호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예진의 리더십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회사에 보여주세요.
직원 3. 막심. 디렉터 1년 차. 러시안. 남성. 신규 프로젝트 팀장. 자기애가 강한 프로세스 전문가. 업무 성과를 높이기보다 목표를 하향 조절하는 데에 몰두. 플래닝에 약한 편 (열심히 하면 잘 되겠지요 타입).
팀에 합류해 주어 기쁘고, 2022년 막심의 성과는 12345 장점은 ABCDE. 지속적인 성장을 응원합니다. 두 가지를 연마할 것을 제안합니다.
1) 거꾸로 가는 플래닝 (Backward Planning). 2023년 12월에 달성해야 하는 최종 목표를 정하고, 각 분기의 목표 달성을 위해 6개월 전, 3개월 전, 한 달 전에 반드시 마무리해야 하는 일을 조직화하세요. 돌발 변수에 대응할 시간과 힘이 생길 겁니다.
2)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컨텐츠 (contents)를 더 깊게 이해하세요. 영향력은 그 일의 실무자 수준 또는 그 이상으로 해당 업무의 본질을 이해할 때에 생겨납니다. 프로젝트를 위한 협업을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다음 주의 일대일 면담이 기대반 걱정반이다. 아무쪼록 직원들의 2023년을 응원하는 마음이 잘 전달되었으면 한다. 모두들 2022년 너무나 고생했어요.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