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거스트 Nov 24. 2024

깨어있으려는 마음

 요즘 부쩍 '나라고 별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이 이렇게나 소중하게 느껴졌던 적이 없었다.

 나 스스로를 곧잘 생계형 직장인이라고 칭하고 다녔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그래도 젠체하는 기분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월급은 그저 따라올 뿐이라는. 오만하고 방자했다.


 왜 마음이 한풀 꺾였는지 들여다보니 여러 가지다.

 일단 나이를 먹었다. 몇 해 후면 쉰 살이 된다니. 나 참.

 또래의 많은 친구들이 직장을 잃었거나 그만두었다. 각자 사는 나라와 일하는 곳은 달라도 '빌런 질량 불변의 법칙'이라며 각자 주변에 있는 또라이들을 잘근잘근 씹어주던 맛이, 회사 안에서 소소한 갈등과 성취에 대해 지치지 않고 수다를 떨던 자리들이 지난해와 올 해를 거쳐 확 줄어들었다. 나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일이다.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이 내 인생의 전성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말. 바꿔서 생각하면 그 전성기가 하필 지금일까 봐 두렵다는 말이다. 앞으로 남은 건 오직 내리막길일 테니까.


 흔히들 마음이 내려앉을 때 감사노트를 적어보라고 하지 않나. 그래서 적어봤다.

 이제 다 자란 세 아이들. 모두 착하고 건강하다.

 성실하고 한결같은 배우자.

 노화로 몸이 약해지시긴 했지만 짱짱하게 살아 계신 부모님.

 한국인의 고착형 콤플렉스인 영어는 모국어만큼 편안해졌고 (발음은 여전히 구리지만), 꽤 알려진 글로벌 기업 본사에서 여전히 현역이며...


 그래도 제일 감사한 건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이다. 변함없는 최애. 나의 넘버 원.


 내 유튜브 알고리즘이 무슨 바람을 탔는지 요즘 아침마다 올라오는 영상들은 죄다 '월급이 소중해지기 시작하면 곧 잘릴 신호'라는 둥, '직장인은 평생 부자되긴 글렀다'는 둥, 아주 하루의 시작부터 기를 꺾어댄다. 아.. 아침 댓바람부터 유튜브를 켜는 버릇을 먼저 고쳐야 하나...


 어쨌거나 저쨌거나 자꾸만 가라앉는 마음을 그냥 둘 수만은 없다.


 지난 이 주 동안 한 일들.


 가지고 있던 자산을 아주 약간 처분했다. 남편에게 맡겨두었던 것인데 싹 다 가져왔다.

 네덜란드에 사업자 등록을 했다.

 내 회사의 도메인 등록을 하고 이메일 계정을 새로 만들었다.

 사업 파트너가 될 사람을 찾아 첫 번째 주문을 넣었다.

 

 알라딘에 8권의 책을 주문했다. 네덜란드로 실어오려면 배송비에 통관비까지 배 보다 배꼽이 더 크지만, 전자책이 안 나온다. (출판사 여러분, 이러기 없기이지 말입니다.)

 1. 아메리칸 비즈니스 - 미국 기업은 어떻게 성장했는가. (요즘 최애 유튜브 채널 지윤&은환의 롱테이크에서 언니들의 수다를 듣고 꽂혀버림)

 2. 레이 달리오의 원칙. (이 책은 몇 년 전에 사서 읽던 중 누군가에게 빌려줬는데 돌려받지 못했다. 매우 억울. 살짝 분노. 제 책 가져가신 여러분들, 제발 돌려주세요.)

 3. 디테일의 힘 - 작지만 강력한, 우리에게 부족한 1%는 무엇인가

 4 - 5.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매니지먼트 편, 이노베이션과 기업가 정신 편 각 하나씩. (이 책은 존재하는지도 몰랐는데, 애정하는 유투버 사장 썸머님께서 하도 강추하시어서 설득됨)

 6. 심플, 결정의 조건 - 세상 모든 복잡한 문제에 대응하는 단순한 규칙

 7. 불확실한 걸 못 견디는 사람들 - 가장 큰 두려움을 가장 큰 힘으로 바꾸는 마법 (지윤&은환의 롱테이크를 듣고 귀가 팔랑하여 넘어감)

 8. 돈의 심리학 - 당신은 왜 부자가 되지 못했는가 (나도 진짜 내가 왜 이 모양인지 궁금해서 장바구니로)



 내가 어쩔 수 있는 인간이든, 없는 인간이든 지금이 전성기라고 믿고 싶지 않다. 그건 안된다.

 

 아직은 깨어있고 싶다.


 나를 응원합니다.


 P.S. 혹시 예전에 제가 잔뜩 사들였던 AI 관련된 책들을 다 읽었는지 궁금해하는 분이 한 분이라도 계신다면... 첫 번째 책의 첫 번째 챕터를 넘지 못하고 포기했습니다. 도저히 아무리 멱살 잡고 읽으려 해도 너무 재미가 없어서요. 그렇게 또 서재 데코레이션용 책들이 왕창 생겼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요.



(대문 사진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이전 06화 가장 좋은 집 vs. 가장 후진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