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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거스트 Nov 30. 2024

네덜란드 도로에서 하이빔을 맞았다면


 도대체 왜, 어째서, 누가 이 세상을 두 그룹으로 나뉘게 한 걸까.

 차량의 왼쪽에 운전석이 있는 나라와 오른쪽에 운전석이 있는 나라.

 우리나라와 네덜란드는 왼쪽에서 운전하지만, 영국, 싱가포르, 일본은 오른쪽에서 운전한다. 왜, 왜 때문에.


 처음 네덜란드에 왔을 때, 나는 한동안 운전대를 잡을 수 없었다.
싱가포르에서 3년 넘게 매일 출퇴근하고, 주말이면 아이들 라이딩을 다녔다. 매일같이 오른쪽 운전석에 앉아 익숙해진 터였다. 그 과정에서도 중앙선을 넘고, 역주행할 뻔한 아찔한 순간을 겪으며 겨우 적응했었다.

네덜란드에 도착한 후, 모든 것이 새롭고 긴장되는 상황에서 다시 왼쪽 운전에 적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편과 대중교통에 의지하며 두 달을 보내고 나서야 큰맘 먹고 도로에 나섰다.
하필이면 가장 해가 짧은 12월이었다. 출퇴근길은 늘 깜깜했다. 아침 8시나 오후 5시나.

긴장한 나의 손은 핸들을 꽉 잡았고, 어깨는 딱딱하게 굳었다.
35km의 집-회사 왕복 길을 마치 기어가듯 벌벌 떨며 다녔다.

그런데 이 와중에 나의 정신과 영혼을 쏙 빼놓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네덜란드 운전자들의 하이빔이었다.


 고속도로에서 차선 변경을 위해 깜빡이를 켜고 멈칫거리면, 뒤에서 따라오던 차량이 번쩍번쩍 하이빔을 날렸다.

 비보호 좌회전에서 진입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면 맞은편 차량 역시 번쩍번쩍.

'정말 이 동네 사람들, 인심도 고약하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느 날 대낮, 라운드어바웃에서 좌회전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빌빌대고 있는데, 맞은편 차선의 차량이 멈춰 섰다.
그리고 역시나 하이빔 두 번.

‘아, 알겠어요. 안 가고 있잖아요!’ 하고 멈춰 있었는데, 상대 차량 창문이 내려가더니 운전자가 활짝 웃으며 팔을 휘휘 저었다. 나보고 먼저 가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나갈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 주었다.

그 순간 문득 든 생각. ‘어? 여기선 하이빔이 욕하는 게 아닌 건가?’


 회사에 가서 동료들에게 물었더니 웃겨 죽는다며 뒹굴었다. “그건 네가 먼저 가라는 신호지!”

한국에서 20년 넘게 운전하면서 하이빔은 늘 ‘꺼져’라는 무언의 압박이라 배웠던 나로서는 엄청난 문화 충격이었다. 와 씨. 대박.


  그날 이후, 네덜란드가 새롭게 보였다. 이곳에서는 운전자, 보행자, 자전거 이용자 사이의 소통이 활발했다.

여기선 자전거가 최우선이라는 걸 모든 운전자가 알고 있다. 자전거가 지나가면 차는 당연히 멈춘다. 보행자도 마찬가지. 하지만 흥미롭게도, 자전거를 탄 사람이나 보행자가 열에 아홉은 멈춰 준 자동차를 향해 고맙다며 웃거나 손을 흔들거나 엄지 척을 해준다.  

 이제 운전에 여유를 찾은 나도 운전 중에 보행자나 자전거 이용자가 손을 흔들어주면 함께 웃으면서 손을 흔든다. 내가 보이든 보이지 않든.

 웃음은 전염성이 있다. 그렇게 하루에 서너 번씩 낯선 사람들과 웃음과 손짓을 나누며 출근길을 시작한다. 소중한 순간들이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서, "네덜란드 도로에서 하이빔을 맞았다면?"

 오늘 참 운이 좋구나 하면서 천천히 가시던 길 가면 됩니다. 상대방에게 엄지 척 해주면 더 좋구요.


 



 

  덧. 궁금해서 찾아본 각국의 하이빔 문화.  

1. 대한민국: 하이빔은 보통 "비키라"는 재촉의 의미. 강렬한 신호다.

2. 네덜란드: 양보와 배려의 신호. "먼저 가세요. 기다릴게요."

3. 미국: 경고나 주의 신호로 사용. 가끔 "헤드라이트를 켜라"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출처: Car and Driver, AAA Foundation for Traffic Satefy)

4. 일본: 네덜란드와 비슷하게 "먼저 가세요." (출처: Nippon.com)

5. 독일: 고속도로 추월신호. "비키라!" (출처: Allgemeiner Deutscher Automobil-Club)

6. 프랑스: "위험하다" 또는 "내가 먼저 가겠다."(출처: Service-Public.fr)


 모두들 안전 운행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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