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서울마라톤_동마의 거친 심장소리

마라톤 오로지 나를 바라보는 시간

by 원짱ㅣ원시인

비가 추척추적 반긴다. 신발끈을 질끈 맨다.

내 심장과 거친 숨소리가 출발선에 다다른다.

사회자 멘트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3:20이라 적힌 풍선이 비바람에 흔들린다.

이제부터다. 오로지 내 몸에만 집중한다. 누구의 시선도 느끼지 않는다. 그렇게 출발선 아치만 응시한다.


총성이 울렸다. "땅!"


엘리트 그룹들이 뛰쳐나간다. 점점 나의 차례가 다가온다.

긴장감이 미소로 두렵게 번져온다.

첫 발을 내디뎠다. 수많은 군중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심장이 흔들린다. 내 발이 아스팔트를 제친다.

긴장감과 함께 숨이 가빠오기 시작한다.

띠리릭! 기계음과 함께 진짜 시작이다. 아주 긴 주로(走路)가 나를 반긴다.


42.195km...


달리는 동안 모든 상황에 나는 순응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이전 나의 모습보다 성장한 나를 기대한다. 그런데 욕심이 밀려온다. 기록 욕심이다.


이성으로 욕심을 누른다. 하지만 육체는 페이스를 높인다.

이전에 남긴 한낱 숫자 앞에 인간의 욕심은 빈틈을 찾아 내 달린다.


심장이 더 조여 온다. 숨소리가 게걸스럽게 울린다. 오버페이스다.

머리에서 페이스가 빠르다고 외친다.

하지만 육체는 이미 관성을 유지한다. 어쩌면 머리가 반대로 지시하는지 모른다.

인간의 양면성이 욕심으로 표출된다.


'달려라 힘차게 내달려라.'


점점 군중 속에서 러너와의 간격이 넓어진다.

그렇게 각자의 페이스가 생긴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워치를 본다. 페이스가 빠르다. 이 상태 내 리듬을 유지하려고 고집한다.

문득 생각한다. 내 몸이 지면과 닿는 대로, 내 옆으로 스치는 사람들을 본다.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고통을 잊기 위해 딴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얼마가지 못하고 가빠오는 심장을 생각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달려야 하나?

어느덧 10km 지점을 통과한다.


이제 나의 리듬과 자세에 집중한다. 비슷한 페이스의 러너에 붙는다.

밀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벌어지면 다시 붙어 낸다. 그러니 힘에 부친다.

또, 오버페이스다. 하지만 이 리듬을 내 것인 양 유지한다. 착각인 줄 모르고...


수많은 러너들이 내 뒤편으로 스쳐지나간다.

하나, 둘, 셋, 넷, 여섯아홉열하나... 스물둘, 셀 수 없이...

만족한다. 누구에게? 바로 내게 말이다. 도취하여 도파민을 뿌린다.


'나, 꽤 잘 달리고 있어.'


13km 지점부터 신호가 온다. 왼쪽 발목이 심술을 부린다.

때를 기다린 듯 슬금슬금 올라온다.

애써 모른 척 무시한다. 하지만 신경이 자꾸 쓰인다.


발목은 안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발목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발목 눈치를 본다. 살짝 페이스를 놓는다. 자세도 바꿔 본다.

설득한다.


'지금 포기할 수 없지 않잖아. 그렇지?'


시작이 반이라고 한다. 그런데 하프는 보이지 않는다.

반도 안 했는데 숨이 차오른다. 거친 페이스 때문일까?

잘못 탄 열차다. 점점 끌어주던 기관차를 놓는다.

아니 놓고 싶지 않지만 놓을 수밖에 없다.

타협은 간절할 때 온다. 바로 지금이 그 순간이다.


앞에서 끌었던 러너를 놓는다.

앞으로.. 앞으로.. 군중 속으로 내어 드린다. 그는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다.

내 기억 속에 사라지라는 듯이...


이제부터가 진짜 혼자다.

수많은 갤러리들의 쏟아지는 외침만이 귓가에 맴돈다.

함성 소리에 다시 힘을 내 본다.

지금의 내가 궁금해진다. 워치를 보려고 왼팔을 쳐들다 내린다.


숫자에 마음이 흔들리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를 자책하고 싶지 않다.

그냥 내 몸이 이끄는 대로 나의 리듬에 집중하기로 한다.

하프만까지만이라도 페이스 유지하려고 가슴을 다독인다.

그런데 이성이 육체와 타협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아직 반도 안 왔다.


저 멀리 20km 플래카드가 비에 젖어 나부낀다. 기쁘다. 그런데 하프는 21km이다.

힘이 든다. 자세가 흐트러진다. 고개가 떨어진다. 다시 힘을 내어 고개를 쳐든다.

멀리 있어 작아 보이는 러너들을 간절히 바라본다.


'저 앞에 내가 있으면 좋겠다.'


개미 때처럼 앞에 달리는 그들이 부러워진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먼저 간 그들이다.

인간은 비교를 거부하지만, 비교를 통해 나를 채운다.


다시 힘을 낸다. 거리를 좁히려 애쓰는 만큼 다리는 더욱 무거워진다.

하프를 넘어섰으니, 지금까지 달린 만큼만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심장을 달래 본다.


'30km까지만 우선 가보자.'


나를 넘어 지나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본다.

다리에 감긴 테이핑에 따라 러너의 고통이 느껴진다.

앞지르는 저들도 나처럼 고통스럽겠지....


27km 지점에 왔다.

오른쪽 햄스트링에 경련이 몰려온다.

경련이 시작되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달래고 달래 본다. 하체 힘을 빼본다.

하지만 약간에 경사에도 햄스트링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페이스를 낮춘다. 아니 낮아진다.

내 눈앞에는 힘들게 쏟아내는 폐 소리만 들린다.

깊고 거친 숨소리가 도로에 가득하다. 나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투하며 달리다 보니 30km를 지났다.

이제부터는 갤러리들이 보이지 않는다.

침묵의 시간이다.

처벅처벅 힘겨운 발자국 소리와 러너들의 비명 소리만 들려온다.


한 사람 두 사람 씩 내 뒤로 사라진다.

걷는 사람, 주저 않은 사람, 쓰러진 사람들...

파스 뿌리는 소리가... 코를 맵게 한다.


경련이 오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내 몸을 잘 달랜다. 그래 조금만 참아보자.


이제 10km만 참아내면 커다란 롯데월드타워 앞이다.

그러면 다 온 것이다. 걷고 기어서라도 남은 거리는 어떻게든 들어간다.


35km 침묵의 구간은 조용하다. 모두가 가장 힘들다.

가쁜 호흡 소리와 젖은 운동화가 땅을 짓누르는 소리만 들린다.

멀리 앞선 러너들이 보인다.

긴 구간의 끝이 보인다. 밝은 빛을 향하여 오른쪽으로 돌아 나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바로 저 구간만 지나면 탁 트인 잠실대교가 보일 것이다.


이제 막바지다. 38km 플래카드가 옆으로 지나간다.

코너를 돌자마자 수많은 갤러리들의 함성이 쏟아진다.

슬라이스 레몬, 꿀물들을 주며 얼마 안 남았다는 함성으로 힘을 준다.

일면식 없는 갤러리들이 배번에 내 이름을 부른다.


"OOO! 팟팅, 다왔다~!"


몸이 연기한다. 힘들지 않은 척, 고통스럽지 않은 척,

함께 괴성을 질러도 본다. 작게나마 힘이 나는 듯하다.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 다리를 끌어올린다.


다리 위에 올라서니 바람이 강하게 반겨준다.

마지막 힘을 내려는 내가 싫은지 세차게 나를 밀어낸다.

커다란 카메라들이 수없이 보인다.

애써 웃음 가득 머금고 싶지만 쉽지 않다.


드디어 커다란 사거리가 눈앞에 나타난다.

빽빽한 갤러리들 사이로 우회전을 하고 광활한 잠실대로에 들어선다.

역풍이 더 강력히 나를 반긴다. 숨을 곳이 하나도 없다.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 낸다.


한 발, 한 발이 고통으로 보답해 온다. 조금만 참아 내자.

그 순간, [3:20]이라고 쓰인 풍선이 스친다.

그 뒤로 십여 명이 그룹을 이루며 바람을 뚫고 나간다.


마치 정어리떼들이 거친 조류를 헤쳐 나가 듯 바람 사이를 헤엄쳐 간다.

저기다. 붙어야 한다. 아니 붙어야 3:20에 들어간다.

심박이 오르며 가자미근에 힘이 뻗친다.

근육통의 발악을 무시한다. 이제 마지막이다. 혼신의 힘을 쥐어 짜낸다.


그렇게 붙어낸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갈 듯 벅차오른다.

눈에 힘줄이 돋고 숨이 깊고 빨라지며 힘겹게 붙는다.


41km 지나는 순간 숨이 쳐지며 다리에 근성이 떨어진다.

아직은 아니야 팩에 붙어 가야 한다.

그래야 바람을 뚫을 수 있다.

하지만, 하지만, 점점 멀어진다. 더더더~ 벌어진다.


그룹에서 점점 흘러내린다.

그렇게 흐르며 앞으로 그들을 보낸다. [3:20]이라 적힌 하얀 풍선은 저만치 내 눈앞에서 멀어진다.

또 다시 혼자다. 진짜 마지막 사투다.


이제는 진짜 나와의 싸움이다. 멀리서 코너를 도는 러너들이 보인다.

저기만 돌아 나가면 마지막 결승선이다.

드디어 코너에 들어섰다.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낸다. 수많은 카메라들이 보인다.


연기한다. 하지만 되지 않는다. 힘들다. 마지막 힘을 내며 내딛는다.

'ㄷ'자 노란 아치가 보인다. 이제 끝이구나.

두 팔을 하늘 위로 뻗는다.


"띠리릭 띠리리리릭!"


다리를 놓는다. 머리에 피가 핑 돈다. 심장이 마지막 떨림으로 흔들린다.

워치를 본다. 정지 버튼을 누른다.

잠시 후 카톡 알림이 온다.


3:20:29


완주..... 42.195km




마라톤이 즐거우려면 기록보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면 돼.

주변을 보고 사람을 보고 풍경을 보며 달리면 진짜 행복해지지.

마라톤이 힘들고 불행한 이유는 남들과의 비교에서야. 그리고 기록 욕심에서 나오지.

다음에는 춘천 마라톤이야, 춘마라고도 부르지. 이때 만큼은 진짜 마라톤을 즐기자.


#2025서울마라톤 #동아마라톤 #PB달성 #2025춘천마라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