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의 에피소드
우리네 삶은 하루에도 이런저런 여러 가지 일들과 수많은 사건 사고가 벌어진다. 그리고 유독 그러한 일들이 많이, 다양하게 벌어지는 날이 가끔 있다. 어떤 이들은 남들보다 더 자주, 더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내게도 그런 날이 많았고 3월 16일도 그런 날 중의 하나였다.
큰 고모 댁은 파주이다. 어제 국립암센터에 다녀온 아버지가 대구로 내려가는 날. 파주에서 출발해 고속터미널까지 가야 한다. 버스 예매 시간 1시간 30분 전에 출발했다. 서울로 진입하는 도로가 약간 막혔지만 늦지 않게 제 시간에 도착했고, 다행히 주차장에 빈 자리를 빠르게 발견할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라 생각하고 주차하고 나서 조수석에 문을 열어주려는데 차가 지나가며 나의 다리 아래 쪽과 발을 치고 갔다. 그런데 못 느꼈는지 그냥 가던 길을 가는 것이었다. 주차장이라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쫓아가다가, 이내 멈칫, 버스 출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차 번호만 적고 아버지와 함께 버스 타는 곳으로 향했다. 어려운 길은 아니었지만 고령인 아버지가 찾아가기에는 헤매일 수도 있는 지라, 같이 따라가서 버스 안 자리까지 알려주고 나서 내려왔다.
다음 일정이 있어 바로 이동하였고, 그 일정은 아티스트 이소예의 프로필 촬영 픽업이었다. 이미 예약해 두었던 스튜디오는 신사역 근처였고, 소예를 픽업할 장소는 석촌이어서 고속터미널에서 석촌으로 이동 후 소예를 픽업하고 신사동 스튜디오로 향했다. 예약금은 현금으로 이미 냈고, 나머지 금액을 부가세를 포함한 금액으로 카드 할부로 결제하였다. 결제하고 나서 나는 촬영을 볼 겨를도 없이 또 이동하였다.
이동 전 아까의 뺑소니가 생각이 나 고속터미널 앞에 있는 경찰서 번호를 검색해 전화하였다. 경찰서에서는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고 집에 가시면 거기서 112로 전화해서 신고하라고 했다. 바로 신고가 안 되냐고 물어보니 블랙박스 확인하고 112로 전화해서 신고하라고 했다. 나는 또 이동을 해야 해서 우선 알겠다고 하고 또 운전대로 향했다.
다음으로 향한 장소는 행주대교 인근의 정비소. 그곳은 외제차를 전문으로 수리해 주는 업체였는데 11월 중순에 맡긴 차를 오늘 거의 4개월여 만에 찾으러 가는 것이었다. 12월 말에서 1월 초에 수리가 끝나도 벌써 끝났을 건데, 사장님이 차일피일 미루고 미루어, 내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오늘은 차를 가져가야 하니 꼭 출고시켜 달라고 전달하고 찾아가는 길이었다. 뺑소니 차를 신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면서 서울을 빠져나가 도로를 빠르게 내달렸다. 정비소에 도착하니 토요일 오후 시간이라 대기된 차들이 쭉 있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원래 토요일 점심 이후에는 퇴근하고 아무도 없지만 일부러 사장님이 나 때문에 기다리는 상황이라 사장님을 찾아보았다. 문은 열려 있고 사람은 없었다. 우선 차 상태를 살피기 위해 키를 꽂고 시동을 걸어보았다. 차의 다른 부분도 둘러보았고 큰 문제는 없어 보여 사장님께 연락하고 차를 가져가려고 했는데.. 왼쪽 앞 부분과 문 옆쪽에 이게 무슨 일?! 내가 맡길 때만 해도 겉으로는 아무 이상 없었던 차의 왼쪽이 망가져 있었다. 파손된 수리 부위를 보고 놀라서 순간적으로 멈칫. 몇 초간 이게 뭐지 하며 멍한 상태로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은 채 사장님에게 전화를 했고 사장님이 곧 오겠다고 했다. 도착한 사장님은 묻지도 않았는데 뭔가 찔렸는지 찌그러진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어제 그렇게 된 것 같은데 주차된 상황에서 아무도 없을 때 누가 그렇게 치고 갔다고 했다. 뭐 누가 들어도 수상쩍기 그지 없는 말이었지만 일단 듣고 있었다. 파손된 부위는 수리비 없이 고쳐주겠다고 하면서 부품비도 알아봤고 주문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아니, 내가 그런 게 아니니 당연히 고쳐줘야 하는 거 아닌가ㅎ 차를 몇 개월을 맡겼는데 어제 그랬다고?! 벌써 그렇게 된 상태였을 수도 있고 설령 어제 그랬다고 해도 미리 차주인 나에게 말을 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이었으면 난리났을지 모른다. 그냥 난 이 상황을 주변 가까운 사람들에게 공유를 했다. 나보다 더 분개하고 경찰서에 고소하라느니 물어달라고 하라느니 그런 대답들이 돌아왔다. 난 차분하게 오늘은 일단 차를 가져가야 하니, 다시 가져오겠다고 하고 망가진 차를 타고 자리를 떠났다. 떠나기 전 더 황당했던 말은 조기 폐차를 알아보라고 조기 폐차를 하면 3백만원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ㅎ 감가 상각이 있겠지만 여러 중고차 판매 사이트에 조회할 때 6백만원 정도 견적이 나오는 차였다. 설령 6백을 못 받더라도 어쨌든 3백만원이라는 단어는 기분이 나쁘기에 충분했다. 더 길게 말하기 싫어 우선은 가려는데 사장님이 새 커피라면서 아메리카노를 건네주는 것이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뭔가 찔리시기라도 한 걸까ㅎ 저녁에 또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자리를 나섰고 밤까지 망가져 있는 그 차를 타고 다행히 일정은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미션 수리를 맡긴 차였는데 그 부분은 잘 고쳐진 것 같았다. 그거라도 위안으로 삼고 16일 토요일의 하루는 마감했다.
하루종일 다니면서 겪은 여러 일련의 일들은 평범한 하루 속에서는 나름 다이내믹한 에피소드들이지 않을까 싶다. 매일매일 이런 일들을 겪지는 않지만 유난히 남들이 겪지 않는 일들을 남들보다 더 자주 겪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혹시 당신이 그 경우에 해당하지는 않는지 한 번 잘 생각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