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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vs캄보디아, 유네스코 유산을 두고 다투다

이웃한 나라가 진짜 친해질 수 있을까?

최근 캄보디아에서는 "태국과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킬링필드의 참상을 겪은 지 불과 50년 남짓. 그래서인지 캄보디아 사람들 사이에는 여전히 전쟁에 대한 공포가 자리하고 있다. 그 소문에 불안해하던 직원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태국 입장에선 전쟁을 일으킬 만한 명분이 약해. 그리고 설령 무력 충돌이 일어난다 해도, 천연자원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한 러시아나, 미국이라는 강력한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과는 다르지. 태국은 관광업 의존도가 높아. 전쟁이 나면 경제에 치명타야.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말을 들은 직원은 조금은 안심한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국경을 맞댄 나라들끼리 친하게 지낸 사례는 드물다. 한·중·일, 독일과 폴란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부분 갈등의 역사를 품고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미국과 캐나다처럼 국경을 공유하면서도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흔한 사례가 아니다. 캄보디아와 태국의 관계도 그리 다르지 않다. 겉보기엔 불교국가로서 문화도 비슷하고 음식도 비슷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오랜 역사적 앙금이 흐른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의 ‘문명의 시작’을 연 쪽은 캄보디아 쪽이다. 9세기부터 15세기까지 번성했던 크메르 제국, 이른바 앙코르 제국은 그 당시 동남아에서 가장 강력한 문명이었다. 인구도 수백만에 이르렀고, 지금의 앙코르와트, 바이욘 사원 등 거대한 석조 건축물들이 그 위세를 보여준다. 하지만 15세기 들어 태국(당시 아유타야 왕국)의 침공으로 수도가 함락되고, 크메르 제국은 무너진다. 이후 캄보디아는 오랫동안 태국과 베트남 사이에 낀 약소국으로 살아가야 했다. 태국의 식민지가 되지는 않았지만 간섭을 많이 받으면서 독자적인 국가 정체성이 사라졌다. 19세기말, 캄보디아는 태국과 베트남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캄보디아는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기를 자청한다. 프랑스도 알아서 오는 캄보디아를 막지는 않았다. 이는 외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길이었지만, 그들에겐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이 때문일까. 캄보디아인들의 프랑스를 바라보는 관점은 우리가 일본을 바라보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앙코르와트는 태국 것인가?

그 이후 양국은 표면적으로는 조용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어떠한 사건에서 폭발하고 만다. 2003년, 태국의 유명 여배우가 태국 방송에서 "앙코르와트는 원래 태국의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캄보디아 언론에 보도된다. 이 보도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자존심에 불을 지폈다. 프놈펜에서 반태국 시위가 격화되었고, 심지어는 캄보디아 내 태국 대사관이 불이 탔다. 태국은 급히 자국민을 철수시켰고 양국 외교는 극도로 악화된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여배우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실제 방송 화면도 해당 발언 장면이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도 캄보디아 쪽에서 오역했거나 과장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미 사람들에게는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캄보디아인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앙금과 불만이 표출하게 된 계기였다.


한국인들에게 캄보디아는 앙코르와트만 알고 있을 뿐이지만, 이곳엔 유수히 많은 유적지가 있다.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엡립에서 약 차로 4시간 떨어진 곳에 "프레아 비히어 사원(Preah Vihear Temple)이 있다. 이곳은 9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지어진 크메르 제국의 힌두교 사원이다. 탁 트인 산등성이 위에 지어져 있어서, 고대인들이 어떻게 이런 곳에 이토록 정교한 건축을 올렸는지 경이로울 정도다. 지리적으로 보면, 사원은 해발 525미터에 위치한 산의 절벽 위에 세워졌는데, 이 산맥이 바로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을 이루고 있다. 사원의 입구는 태국 쪽에 가까이 있지만, 건물 대부분은 캄보디아 영토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많은 국경분쟁이 그렇듯 이러한 위치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프레아 비히어 사원을 둘러싼 갈등의 뿌리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누가 지도를 그렸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캄보디아와 태국 사이의 경계는 두 나라 간의 협의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20세기 초, 캄보디아는 프랑스 식민지였고, 태국(당시 시암)은 강대국 사이에서 외교적으로 줄타기를 하며 간신히 독립을 유지하던 나라였다. 1904년, 프랑스와 시암은 국경 설정 협정을 체결하고, 프랑스가 지도를 그렸다. 이 지도에는 해당 사원이 캄보디아 영토 안에 포함된 것처럼 표시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태국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분쟁의 씨앗은 남아있었다. 당시 지도를 그렸을 당시에는 당사자인 캄보디아와 태국의 의견이나 역사적 소속감은 고려되지 않았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1962년에 이 사원이 캄보디아 영토라고 판결했지만, 그 주변 땅은 모호하게 남아 있었고, 이 때문에 갈등이 반복되었다. 태국은 사원 주변 지역 0.35 km² 만 캄보디아 소유라고 주장하는 반면 캄보디아는 4.6 km²가 자국령이라고 맞서고 있다. 특히 2008년 이곳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분쟁은 더욱 커졌다.


이런 식민지 경계 문제는 동남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더 알려진 사례로 인도와 파키스탄 분단이 있다. 1947년, 영국이 인도에서 철수하면서 "라드클리프 경계선(Radcliffe Line)"이라는 국경선을 급히 그었다. 이 국경은 단 5주 만에, 인도를 처음 방문한 영국 관리가 한 장의 지도만으로 종교와 언어, 역사, 민족 등을 무시한 채 자로 그은 선이었다. 그 결과, 수백만 명이 국경을 넘어 피난길에 올랐고,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유혈사태로 이어졌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이곳은 양국 간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분쟁은 계속된다

태국과 캄보디아, 두 나라는 지금도 경제적으로 많이 교류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많은 노동자들이 태국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태국의 전기, 공산품 등 많은 것들이 캄보디아로 수입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직도 민감한 감정이 흐르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앙코르와트는 단순히 사원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정체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심지어 국기 중앙에 그려져 있다. 만약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한다면 어떨까? "앙코르와트는 태국의 것이다." 이 발언은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거의 국가 모욕에 가깝게 들린다. 마치 누군가 몽골 사람에게 "칭기즈칸은 중국인이다."라고 말했을 때와 같은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중국의 일부 교과서나 공식 발언에서는 칭기즈칸을 중국 역사에 포함된 인물로 서술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몽골 제국이 한때 중국 대륙을 지배했기 때문에, 그 역사도 ‘중국의 일부’라는 논리다.


모든 역사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나라의 과거는 반드시 그 이웃의 과거와 엮여 있다. 경계는 선명해 보여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문화, 전쟁, 사람들이 흔적이 있다. 역사는 두부 자르듯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문화와 언어는 섞이고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살아왔다. 앙코르와트는 크메르 제국의 유산이지만, 그 제국은 태국 북부까지 영향을 미쳤고, 시암 왕국은 이후 크메르 땅을 정복하여 지금의 태국이 되었다.


때로는 이러한 역사적인 감정을 정치인들이 이용하기도 한다. 권력자들은 애국심을 자극하고 대중은 거기에 열광한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무기로 사용된다. 이웃한 나라가 친해지기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국경을 공유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공유한 기억이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preakhvikhea.jpg 하늘에서 본 프레아 비히어 사원(Preah Vihear Temple) *구글 캡처
PEP20131111067401034_P4.jpg 프레아 비히어 사원(Preah Vihear Temple) *구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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