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는 앙코르와트 빼면 시체 아니야?” 사람들이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한다. 한편으론 틀린 말도 아니다. 앙코르와트는 분명 압도적인 명소이다. '살면서 꼭 가봐야 할 유적지 20'안에 꼭 들어가는 곳이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6시간 충분히 올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 나라가 그것 하나만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나도 캄보디아에 오기 전까지는 '캄보디아=앙코르와트'였다. 수도 프놈펜은 잠시 스쳐가는 장소이며, 시아누크빌과 같은 휴양지가 있지만 중국인들을 위한 카지노가 많은 곳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직접 살다 보니 그 말은 나의 착각이었다. 캄보디아는 2천 년 역사의 크메르 문명의 자취가 있는 곳이다. 특히 11~13세기는 동남아시아의 패자였다. 당시 수도 씨엡립과 맞먹은 도시는 중국 송나라의 항저우 정도였다.
캄보디아에 오랫동안 거주하다 보면 '이 나라가 생각보다 가볼 만한 곳이 많구나'라는 곳을 알게 된다. 프놈펜 주변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루 정도 시간 내에서 갈 수 있는 도시들이 여럿 있다. 캄퐁참(Kampong Cham), 우동(Oudong),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캄퐁츠낭(Kampong Chhnang) 그 예다. 이 도시들은 화려하진 않지만, 캄보디아 사람들의 삶과 일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공간이다. 그중 캄퐁츠낭은 프놈펜에서 약 1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도시다.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도 부담이 없다. 버스는 BookMeBus 사이트에서 쉽게 예약할 수 있고, 현지 터미널에서도 표를 구할 수 있어 접근성도 좋다. 만약 당신이 프놈펜에 3일 이상 머무르고 있다면, 하루쯤은 시간을 내어 캄퐁츠낭을 다녀오는 걸 추천한다. 관광지로 포장된 도시와는 전혀 다른, 날것 그대로의 캄보디아를 만날 수 있다.
내가 캄퐁츠낭이라는 도시를 알게 된 것은 "세계테마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캄보디아의 여러 곳을 방문했는데 눈길을 끌었던 곳이 있었다. 바로 '캄퐁츠낭'이라는 수상마을이었다. 여기에서는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아이들이 보트를 타고 학교에 가는 장면이었다. 학교는 물 위에 떠있었고 선생님도 보트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어부이며 생선을 주요리로 하고 있었다. 이국적인 모습에 '나중에 캄보디아에 가면 여기를 꼭 가봐야지'라고 생각을 했다.
캄퐁츠낭은 ‘항아리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도시다. 전통적인 도자기 마을이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도시를 진짜 특별하게 만드는 건, 바로 강가에 펼쳐진 수상마을이다. 현지인들에게는 생활의 터전이지만 나처럼 일부 호기심 많은 여행자들의 숨겨진 장소이기도 하다. 개별적으로는 가기가 힘들기 때문에, 진짜 마을을 보고 싶다면 보트 투어를 해야 한다. 마을 근처에 가면 투어를 하라고 호객하는 상인도 있는데, 인터넷 후기를 보면 보트당 20달러 정도로 저렴한 요금이 아니었다. 여행자가 여럿명 있다면 해볼 만하나 나처럼 혼자 여행하는 경우라면 부담스럽다. 다행스러운 점은 굳이 투어를 하지 않더라도 혼자서 마을 입구에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수상가옥까지 들어가지는 않아도, 강 근처를 걷는 것만으로도 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처음 보이는 것은 나무로 만든 강가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50m 정도의 길지는 않지만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다리이다. 안전 손잡이가 없어서 바닥을 잘 보고 건너야 한다. 강물이 더럽지는 않지만 빠지면 곤란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다리를 건너면 보이는 것은 딱 봐도 '캄보디아 시골에서나 볼 법한 오래되고 낡은 집' 들이다.
조금 더 걸어가면 강가가 나온다. 어부들이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 반쯤 몸을 강에 담그고 물살을 본다. 그물이 허공을 가르고 물 위로 퍼진다. 찰나의 순간을 셔터에 담는다. 좀 더 좋은 성능의 카메라를 가져오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5분쯤 지나자 그물에서 고기가 걸렸는지 확인한다. 잡힌 물고기들을 꺼내고 또 다시 그물 던지는 동작을 반복한다.
스리랑카의 갈레라는 휴양지에 가면 어부들이 나무 장대 위에 걸터앉아 낚시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실제 고기를 잡기보다,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관광객을 위한 퍼포먼스로 바뀌었고, 사진 한 장 찍는 데 몇 달러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기는 진짜 어부들이다.
이곳은 확실히 가난하다. 부족한 게 많고, 외국인에게 익숙한 것들은 거의 없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익숙하게 누리는 편의는 이곳에 없다. 깨끗한 수돗물, 고른 도로, 빠른 인터넷 신호도 없다. 냉방은 사치다. 전기가 자주 끊기고, 도로는 비포장이며, 인터넷은 느리다. 병에 걸리면 치료받기가 힘들고 약도 구하기 힘들다.
몇몇 아이들은 벌거벗은 채 수영을 하고 있었다. 몇 마리의 개들도 강가를 어슬렁거렸다. 다른 곳에서는 스마트폰을 갖고 노는 아이들이 많겠지만 이곳은 다르다. 스마트폰을 살 만한 여유가 없다. 맨발로 흙바닥을 뛰논다. 나뭇가지 등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을 장난감 삼아 놀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여기서 일주일만 살다 와" 라고 한다면 살 수 있겠는가? 이미 도시의 쾌적함과 현대 문명이 주는 안락함에 빠져 있는 당신은 이런 제안을 거부할 것이다. 가난해 보이는 그들과 함께 같은 조건에서 살아본다는 것, 그것은 관광이 아닌 ‘체험’이다. 여행자의 환상은 오래가지 않는다. 삶은 생각보다 훨씬 거칠고 무겁다.
우리에게 낭만으로 보이는 그 풍경은, 그들에게는 현실이다. 여행자의 눈에는 한가로워 보이는 모습이, 그들에겐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시간을 때우는 것일 수도 있다. 속으로는 오늘 저녁 한 끼 걱정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느긋하게 물고기를 잡는 어부의 모습도 그들에겐 오늘 잡은 양이 부족해 자녀 옷값이나 생계 걱정을 하는 현실일 수 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하는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지구상에서는 기후나 개발 등으로 사라지고 있는 마을이나 국가가 있다. 인도 북서쪽의 지역은 사막화로 거주지가 줄어들고 있으며,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 투발루는 해수면 상승으로 점점 바닷속에으로 가라앉고 있다. 중국의 첸룽시에는 댐 건설로 수많은 마을이 사라져서 1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캄보디아의 캄퐁츠낭도 앞으로 10년 후 어쩌면 지도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곳이다. 캄보디아 정부는 톤레삽호와 메콩강 주변 수상가옥을 ‘비위생적이고 등록되지 않은 거주지’로 보고 철거를 진행하고 있다. 2021년부터 프놈펜 근처에서 수상가옥 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캄퐁츠낭도 예외가 아니다. 주민들에게 육상 이주를 명령하면서 수상가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또한 기후 변화와 수위 변화도 수상가옥 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 가뭄과 홍수가 자주 반복되면서 안정적으로 물 위에서 살기 어려워졌고, 어떤 마을은 물이 너무 낮거나 오염돼서 더는 수상생활이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현재는 이곳에 전통 수상가옥 지역이 많이 줄었고, 남아 있는 마을도 규모가 크게 작아졌다. 일부 주민은 정부가 마련한 육상 공공주택으로 이사했지만, 생계 문제와 문화 차이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여행자들은 아직 몇몇 수상마을을 보트 투어로 방문할 수 있지만, 예전처럼 생생한 모습을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라지기 전 마지막 수상마을’을 보고 싶다면 지금이 좋은 때다. 앞으로는 정말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투어 할 때는 주민들의 생활을 존중하고 촬영 예절을 꼭 지켜야 한다.
캄보디아에는 앙코르와트만 있는 게 아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유산 대신, 강가에서 어부가 그물을 던지는 모습이, 물속에서 웃고 있는 아이들의 눈빛이 있다. 캄퐁츠낭은 그런 곳이다. 여기엔 편의점도, 프랜차이즈 커피숍도 없다. 대신 장에서 파는 코코넛 주스 한 컵, 해가 지면 알아서 꺼지는 TV, 전기가 끊기면 잠시 어둠 속에 멈춰 서는 생활이 있다. 관광지로 가꿔진 곳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다. 이곳은 관광이 아니라 관찰의 여행을 원하는 사람에게 어울린다. 눈부시 풍경보다는 묵직한 현실이 궁금한 이들이라면 여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