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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프놈펜 기찻길 마을에서 본 빈곤

프놈펜, 스쳐 지나가기엔 아쉬운 도시

나는 지금 캄보디아 프놈펜에 살고 있다. 여기에 온 지는 두 달쯤 됐다. 동남아에서 사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처음에는 라오스, 그다음에는 태국, 그리고 지금은 캄보디아에서 살고 있다. 얼핏 보면 모두 인접해 있으며 상좌불 불교 국가라 비슷해 보이는 세 나라이지만 한중일이 조금씩 다르듯 여기도 마찬가지이다. 사원을 예를 든다면 태국은 화려하고 장식이 많고 라오스는 좀 더 소박하며 캄보디아는 힌두교의 흔적이 더 많이 보인다.


경제력은 태국이 가장 높고 캄보디아는 여전히 빈곤한 나라다. 통계에 따라 다르지만 2025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캄보디아가 약 2,800불이다. 라오스는 2,100불 정도이며 미얀마는 1,200불이다. 태국이 약 7,800불이며 최근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베트남은 4,800불이다.


캄보디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주로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엡립을 보고 수도 프놈펜은 잠시 스쳐 지나간다. 한 나라의 수도라고 하기에는 딱히 여행자들을 유혹할 만한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의 수도가 씨엠립이라고 아는 사람들도 꽤 많다. 그래도 이곳에는 왕궁이나 실버 파고다 같은 소소한 것들이 있으며 크지는 않지만 여행자 거리도 있다. 사원은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이나 태국의 방콕에 비해서 꽤 적은데, 아마도 예전에 많은 사원들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킬링필드 때 상당수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중국의 일대일대 정책의 핵심 국가가 되어 여기저기에 높은 빌딩이 많이 지어지고 있는데, 기초 인프라나 도시 미관을 고려하지 않은 채 큰 건물만 지어지고 있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만약 이곳을 20년 전에 여행을 와서 봤던 사람이라면 '여기가 내가 알던 곳이 맞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기찻길 마을에서 본 삶의 풍경

얼마 전 일요일, 나는 우연히 프놈펜 기찻길 근처 마을을 다녀왔다. 시내에서는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여행자들이 전혀 갈 일이 없는 곳이다. 캄보디아에 기차가 있다는 것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동남아는 유럽과 달리 기차 여행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고 주로 버스로 도시나 국가 간 이동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는 기찻길 바로 옆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철로를 중심으로 양옆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그냥 지나가면 잘 안 보이지만 안으로 조금 들어가 보면 그야말로 생활의 현장이 펼쳐진다. 아이들은 기찻길에서 놀고 있고,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도 많다. 어떤 아이는 웃통을 벗은 채로 철로 위를 뛰어다닌다. 아이들의 옷차림은 대체적으로 꾀죄죄하다. 어른들은 그 옆에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가게를 지키고 있다. 판잣집 사이사이에는 미용실, 슈퍼, 자전거 수리점 등 있어야 할 것은 다 있다. 얼핏 보기엔 가난한 동네라고 생각되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그냥 일상의 공간이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철도변 달동네’를 떠오르게 한다. 아마도 어느 나라나 기차역 근처는 비슷한 풍경을 공유하나 보다.


철로변 마을(2025.05.10. 찍음)



기찻길 옆, 가난이 머무는 자리

왜 하필 기차역 주변엔 이렇게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걸까?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하루에도 적게는 한두 번, 많게는 수십 번 기차가 만들어 내는 소음과 진동은 안락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퇴근해서 집에서 쉬고 있는데 기차가 달려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유쾌하지가 않다. 이곳은 ‘가난이 머무는 자리’다. 땅값이 낮고,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어느 나라든 기차역 근처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길가에는 자전거 수리점, 미용실, 작은 슈퍼마켓이 있는데 가게라기보다는 천막 하나, 판자 하나로 만든 임시 구조물에 가깝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문이 열린 집 안을 슬쩍 보면 낡은 선풍기와 TV, 냉장고가 보인다. 문을 열어놓은 집이 많은데 캄보디아는 전기를 모두 수입하기 때문에, 요금이 비싸서 일반 서민들은 에어컨을 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물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면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날 나는 수북해진 머리를 손질하려 이발소를 찾았다. 시내보다 훨씬 저렴한, 1.5달러짜리 로컬 이발소였다.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한 듯한 이 공간엔 에어컨이나 따뜻한 물도 없고 머리카락을 감겨주는 서비스도 없다. 이발기와 가위와 빗, 간단한 이발 도구 등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곳의 이발사는 능숙하게 이발기와 가위로 머리를 손질했으며 10분 후 어느새 깔끔한 '캄보디아식' 헤어 스타일이 완성되었다.


기찻길 옆의 단돈 1.5불 이발소(2025.05.10. 찍음)




달동네는 여전히 존재한다

마을을 조금 더 걷다 보니 쓰레기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음식물 쓰레기, 비닐봉지, 부서진 플라스틱, 낡은 가전제품 껍데기까지. 거리 곳곳엔 정리되지 않은 삶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었다. 여기는 필리핀의 쓰레기 마을이나 인도 뭄바이의 빈민가처럼 극단적인 가난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나름 밝았고 가게도 많았다.


이곳을 걸으면서 문득, 예전에 태국 방콕에서 갔던 파야타이 역 근처가 떠올랐다. 거기도 기찻길 옆에 마을이 있었는데, 시내 한가운데 저렇게 좁고 허름한 곳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한쪽에서는 고층빌딩과 쇼핑몰이 번쩍이고 있는데, 철로를 따라 걸어가면 판잣집들이 줄줄이 붙어 있고, 아이들이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때도 그랬다. ‘이런 곳에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내가 보던 방콕은 진짜 일부였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 어딜 가든 기차가 지나는 길 주변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 방글라데시에도 수도 주변에 빈민가들이 있으며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배경지가 된 곳도 인도 뭄바이 철도변 빈민가이다. 이렇듯 빈민가는 항상 최하위층의 사람들이 받쳐주고 있다. 기찻길 옆은 시끄럽고 위험해서 아무나 살려고 하지 않으니까, 결국 가장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거다. 한국도 예전엔 그랬다. 서울에도, 부산에도 철도 옆에 달동네가 있었고, 지금도 서울역이나 부산역 근처엔 노숙자들이 많다.


기차는 어디론가 떠나는 걸 상징하지만, 그 옆에는 어딜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살아간다. 기찻길 옆 마을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여 있는 곳이다. 불편하고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들은 일상을 이어간다. 가난하다고 해서 모두가 불행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놀고, 개는 뛰어다니며, 어른들은 일하는 등 사람들은 좁고 낡은 공간 속에서도 웃고, 사랑하고, 살아간다. 그곳에도 삶이 있고, 웃음이 있고, 내일이 있다.


- 2025.05.19.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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