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담, <똑 닮은 딸>, 네이버 웹툰, 2021~ .
“아빠 엄마 말 안 들으면 쫓겨날 줄 알아.”
교육적으로 좋지는 않지만, 많은 부모가 해봤을 말일 거다. 나도 그리 모범적인 부모는 되지 못한 관계로, 말뿐만 아니라 실제로 쫓아내는 시늉도 한 적이 있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나도 어린 시절에 분명 당해봤다. 대개는 그래봐야 잠깐 겁만 주고 그치는 수준이지만, 사실 그조차도 아이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공포가 될 수 있다. 아이가 어릴수록 부모는 절대적인 존재니까.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지해야 하는 아이에게는, 부모에게 버림 받는다는 상상만으로도 세상이 끝난 기분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진짜로 실행하는 부모가 있다면? 아니, 집에서 쫓아내는 정도를 넘어서 아예 죽여버리는 부모가 있다면? 그리고 그게 나의 부모라면?
웹툰 <똑 닮은 딸>은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는 한 아이의 생존과 투쟁에 관한 이야기다. 네이버 웹툰 스릴러 부문의 대표적 인기작이며, 2023년 대한민국콘텐츠대상 만화부문, 2024년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했다.
부모의 기대는 자녀에게 독이 될 수 있다
모든 부모는 자녀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 하나도 없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는 못해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평범한 바람도 알고 보면 큰 소망이다. 한 명의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건강하게 자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만, 부모라면 늘 그 이상을 기대하는 법이다. 기왕이면 공부도 잘했으면, 좋은 직장에 취직했으면, 돈을 잘 벌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니까. 하지만 부모의 기대는 자녀에겐 부담이 될 수 있고, 과하면 치명적인 독이 된다. 실제로 성적비관과 가정불화는 아직도 청소년 자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슬픈 이야기지만, 뉴스거리가 되기 쉽지 않을 정도로 흔하다는 것이 더욱 씁쓸한 현실이다.
어떻게 하면 그런 기대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 많은 전문가가 자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부모와 자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자녀에게는 자녀의 인생이 있다는 것을, 부모는 자녀의 인생을 좌우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득도의 경지가 필요하다. 그래도 나를 포함한 많은 부모들은 그런 마음으로 자녀를 대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웹툰 <똑 닮은 딸>의 엄마 명소민은 조금도 그럴 생각이 없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예쁘고 오만했던 그녀는 인생에서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완벽한 인생에 오점이 되는 것들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 대상이 설령 자식이라도 말이다. 명소민은 정말로 자기 자식을 양심의 가책 없이 버릴 수 있는 엄마다.
기대, 부담, 불안.
명소민의 딸이자 이 만화의 주인공인 길소명은 완벽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살아간다. 완벽하지 않으면 엄마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진짜다. 소명에게는 남동생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이유는, 엄마가 남동생을 “구제불능의 글러먹은 애”로 판정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소명은 엄마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다. 엄마를 똑 닮은, 똑똑하고 예쁘며 성실하고 예의 바른 아이로 자라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엄마의 지배에서 벗어나 복수에 성공할 그날만을 꿈꾸며 산다. 그때까지는 엄마가 원하는 완벽한 딸로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무엇이든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며, 반항하지 않는다.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 교우관계도 엄마의 통제에 따라야 한다. 그것이 수시로 끔찍하게 느껴지지만, 절대로 티를 내서는 안 된다.
소명이 느끼는 부담감은 분명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일 거다. 엄마의 기대를 배신하면 자신도 동생처럼 없어질 수 있다는 공포, 그리고 복수에 성공하는 그날까지 절대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고작 12살 때부터 안고 살았으니까.
하지만 소명이 만큼은 아니라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안 된다’라는 불안감이 어떤 것인지는 우리도 알 것이다. “시험을 망치면, 입시에 실패하면, 취업이 잘되지 않으면, 직장에서 버티지 못하게 되면...” 이렇듯 우리도 수많은 기대와 부담과 불안 속에 살아 봤고, 살고 있으니까.
그 불안감이 크면 클수록 사람은 흔들리기 쉽고, 그릇된 선택을 할 확률도 높아진다. 그리고 어떤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자책 끝에 자기 자신을 파괴하거나, 원망 끝에 타인을 해하는 비극을 말이다. 누군가 삶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거나, 세상을 미워해 증오범죄를 일으켰다는 뉴스는 너무나 우리 곁에 흔하고 또 가까이에 있다.
<똑 닮은 딸>의 주인공 길소명 역시 비극적 결말을 향해 가고 있는 걸까? 처음부터 소명이가 복수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평화로운 마무리는 기대할 수 없는 스토리이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길소명이 행복해지는 엔딩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부모라는 이름의 울타리
부모는 자녀의 울타리다. 그 울타리가 크고 튼튼할수록 자녀가 안정을 찾기 쉽겠지만, 때로 그것은 자녀를 가두는 감옥이 된다. 길소명을 가두고 있는 명소민의 울타리는 견고하고 치밀하며 화려하다. CCTV가 잔뜩 달린 고급 주택가의 높은 담벼락을 연상시킨다. 쉽게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게 보이지만, 그 안에서의 삶은 분명 모두가 선망하는 그런 삶일 것이라고 확신하게 만든다.
그 안에서 시키는 대로만 살면 행복한 미래가 보장된다. 실제로 길소명은 어린 나이에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많은 것을 가졌다. 부유한 집안, 압도적 성적, 뛰어난 외모까지. 그 모든 것은 대부분 엄마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엄마에게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 웹툰을 보는 많은 독자들은 그런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고 복수하고 싶다고 하는 소명이에게 깊이 이입하면서 응원한다. 왜일까? 어쩌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길소명이 느끼는 부담과 불안을 우리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입시, 취직, 결혼, 성공... 인생에는 실패하면 안 된다는 것들이 너무 많다. 부모가 자녀에게 기대와 부담을 주는 이유도 대개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다 잘해내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 쓸모없는 자식이 되는 걸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길소명에게 “너는 엄마한테 무조건 감사하고 따라야 해”라고 말하기보다는, 명소민에게 “어머니, 소명이 만큼 해주는 자식 어디 없어요. 부디 이제 소명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어머니 그늘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게 해주시면 안될까요?”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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