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고서 며칠 뒤, 이사를 했다. 부모님 집을 나와 혼자 살아온 기간이 꽤나 길었고, 이제는 혼자 사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 익숙한 상태이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다시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예전에는 주말에만 조금씩 돕던 부모님 가게 일도, 새해부터는 훨씬 더 많이 해야 해서 아마도 평일 낮 대부분의 자리를 지켜야 할 것 같다.
올 한 해는 또 어떻게 흘러가려나. 분명한 건 공부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든다는 점.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면서, 감정적으로 흔들리거나 지쳐버릴 사건들이 더 많아질 거라는 점. 동시에 나는 이 지난한 논문 작업을 계속해서 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근근이 버텨가긴 하지만 그렇다고 안정적이지는 않으며, 헤쳐나가야 할 과제들이 산적한 부모님 가게를, 이제는 좀 더 내 일로 여기며 고민하고 개선해나가야 한다. 과연 잘해나갈 수 있을까….
연달아 연초마다 이사를 하고 있다. 이전에 살던 집은 또 그전에 살던 집보단 훨씬 넓어져서, 그 점은 확실히 좋았다. 간간이 스트레칭을 하거나 몸을 움직여줄 순 있을 정도의 여유, 침대와 책상과 옷장을 제외한 바닥에서 그래도 두 팔 벌려 누울 순 있을 정도의 공간은 있다는 점에서 그리 갑갑하지 않아 좋았다. 하지만 그전의 집은 바로 학교 가까이 있었고, 이번에 이사해 나온 집은 부모님 가게와 더 가까운 지역이었다. 늦은 밤 매일 가게에 도와야 할 일이 생기는 바람에 그렇게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학교 가까이 살 때는 그래도 좀 더 생활에 의욕이 있었고, 하루 시간을 쓰는데도 그리 늘어진단 느낌은 덜했던 것 같은데, 가게 근처로 이사 오며 약간은 끼여 있는 느낌으로, 이도 저도 아니게 지내며, 지지부진하게 지치기만 하며, 그 어느 쪽에서도 힘을 얻질 못하고, 그저 가라앉고 소모되는 시간들만 늘어버린 건 아닐까 생각한다.
더구나 이전의 집은 상당히 부실하게 지어진 집이었다. 방음이 잘되지 않아, 저녁 무렵이면 옆방 대화 소리의 웅웅 거림이 전해졌고, 그러다 보니 나 역시 조심스러워, 혹시 음악을 듣거나 팟캐스트를 들을 때, 맘 편히 소리를 고정하지 못하고 늘 긴장해야 했었다. 또 아침마다 화장실에 가면 하수구 냄새가 너무 매캐하게 올라와 어지러울 때도 있었다. 건물 여기저기에 부실이란 느낌이 강했고, 늘 긴장과 불편함과 악취가 있었다. 사실 조금씩은 슬프기도 했다. 나도 그 비슷한 처지이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이사는 이틀 만에 급하게 이루어졌다. 일정이 빠듯해서 별다른 준비도 없이, 준비할 시간도 없이, 전날 밤 책과 옷만 대략 싸놓고, 다음날 부모님과 함께 다른 짐들을 모두 싸서 차에 싣고, 부모님 집으로 옮겼다. 부모님은 출발하신단 말도 없이 불쑥 도착하셨고, 나는 씻지도 않은 채 아침을 먹다가 얼른 정리하고 짐을 쌌다. 그렇게 짐을 다 싸고 차에 싣고, 마지막 정리를 하고 마지막 남은 짐을 들고서 문을 닫으며, 어머니는 “에고, 그래도 잘 살다 간다” 그 방을 향해 나 대신 마지막 인사를 해주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들으니 또 그런 듯도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게 너무나도 신기한 마음이었다.
그 마지막 말 한마디, 조금의 한숨과 조금의 격려를 담은 그 말에, 그 집에서 겪고 눌어붙었던 무언가가 조금은 덜어지고 씻겨지는 기분이 들었달까. 그래서인지 내가 마지막으로 들어야 할 짐, 이것저것 잡동사니가 어설프게 담겨 있어 위태위태하게 균형을 잡으며 “그래도 내가 다 들고 갈 수 있어” 부모님께 선언하며 맡았던 그 짐들을 여러 번 시도 끝에 간신히 딱 붙잡은 그즈음에는, 그래, 이렇게 조금은 불안해도, 조심히 잘 잡고서, 다시 한번 또 잘해보면 되지 뭐, 그런 마음들이 어느새 마음 든든히 들어차고 있었다.
그래, 다시 한번 또 잘해보면 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