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께서 앞으로 두세 달쯤 전혀 만날 수 없는 장기 출장을 가셔야 해서, 그전에 좀 진득한 사랑 이야기를 같이 보고 싶어 고른 영화였다. 이 영화는 자신의 사랑하는 연인을 위하여 어떠한 정도의 어려움까지도 감수해야 하는지, 또 연인을 믿는다 했을 때는 어떠한 상황까지도 무릅쓰고 믿어야 하는지를 절절히 보여준다. 사랑이란 이렇게 볼 때, 참으로 쉽지 않고 한없이 무겁다.
장국영이 연기한 탁일항은 정의감도 능력도 있어 빛나 보이는 데다, 남들은 바라마지 않는 보장된 권력의 자리를 부담스럽게 여기고 그마저 초탈하려 하니 그 태도도 매력적이다. 그러면서도 정에 이끌려 우유부단하거나, 눈앞의 선을 행하기는 해도 그 행동의 결과나 책임을 더 내다보지는 못하며, 감정적 부추김이나 주어진 굴레에 크게 휩쓸리고 휘말리는 점은 인간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래서 결국은 파국을 초래한다. 장국영의 우수에 젖은 얼굴이나 흔들리는 눈빛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그 나른한 태도 역시 시선을 잡아끈다.
어쩌면 대조적으로, 임청하가 연기하는 랑녀는 대단히 고독하고 굳세어 보인다. 마교라고도 할 수 있고, 극 중에서는 한족에게 배척당하며 소외당하여 끝까지 내몰리며 원한을 쌓을 수밖에 없었던, 변방의 소수민족이라고도 할 수 있을 집단을 수호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탁월하고도 잔인한 무력을 발휘하며 늘 전쟁에 앞장서야 한다. 그렇다고 그 집단 내의 사람들과 두루 교류하며 친밀히 연대한다기보다는 자의에서든 타의에서든 구별되어, 그 책임을 묵묵히 짊어지고만 있다. 사실 마교 교주가 늑대 소굴에서 자라고 있던 랑녀를 아주 어릴 때 데려온 그 순간부터 전쟁을 위해서만 살아가도록 그렇게 구별하고 제한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랑녀에게 다른 어떤 기대나 목적하는 바 없이, 순수한 호의만으로 다가오는 아이들에게 랑녀가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렇게 꾸밈없이 진실하고 진정으로 다가오는 관계에 대하여 랑녀가 얼마나 목말라하는지 역시 느낄 수 있다. 자기 삶 속에서는 전혀 겪어볼 수 없었던 영역인지라 자기 스스로는 그 필요를 알아차릴 수도 없었지만 말이다. 임청하 특유의 비장하고 꿋꿋하면서도 처연한 분위기는 그러한 인물의 그 양극단을 심화시키면서도 설득시킨다.
이제 이 두 사람이 반대 진영으로 만나 사랑에 빠지고, 연인으로서 서로를 바라본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연인으로 만나, 그 이전에는 전혀 아무런 관계도 없었던 타인이었지만, 그래서 자기 삶의 그 어떤 비중도 고려하거나 허락하지 않았던 상대였지만, 이제는 연인으로서 나의 삶 속에 밀려 들어와 흘러넘치며 빛나는 상대에게, 과연 내 삶의 얼마만큼을 포기하며 어디까지를 내어줄 수 있을까, 과연 얼마나 믿으며 그 믿음에 스스로를 내던질 수 있을까.
이 두 연인 중 한 사람은 오직 다른 한 사람과의 새로운 삶과 미래를 위해, 이전의 자신의 삶과 그 배경을 이루었던 모든 연결고리를 끊고자 모진 고난을 감수한다. 하지만 그 사이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애매하게 떨어져 나온 상태에서 다시 부추겨지고 동요되어 애매하게 되돌아가서는, 그 애매함에서 싹을 틔우고 휘몰아치는 감정들과 의심 속에 그 한 사람을 끝내 믿지 못하고 배신한다. 이러한 어긋남은 상황 탓일까, 믿음이나 의지가 부족한 탓일까, 그저 불운이 겹친 탓일까.
나는 장기간 멀리 떠나 있을 연인께, 사랑의 그러한 점을 묻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