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보다 중요한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어느 초등학부모의 고백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며, 의식적으로 되뇌는 질문이 있다.
학원이 정말 필수적일까?
올해 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7세 고시 이슈가 있었다.
개그우먼 이수지의 밈 생성을 통해 그 이슈는 풍자화되고 더 빠르게 소비되었다.
그저 비판하기에는, 나는 좀 더 깊이 생각해야 하는 학부모의 위치에 서 있었기에 내가 저 문화를 불편하게 여기는 이유와 나의 대답은 무엇인지 찾아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입학 전부터 선행을 준비하는 학부모들의 커뮤니티, 돌부터 시작하는 학습지, 초등 3학년이면 필수처럼 여겨지는 수학 학원까지—
모두가 아이보다 먼저 달리고 있는 사회를 나와 나의 아이들은 살아가고 있다.
그와 동시에 선행교육이 아이에게 해롭다는 이야기, 안 해도 괜찮다는 조언 또한 점점 많아지고 있다.
유튜브, 책, 교사 커뮤니티까지도 “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원 열차는 여전히 질주 중이다.
주변을 보면, 선행을 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나 역시 서초구라는 학군지에 살고 있어 “우린 안 시켜도 되지 않을까?”라는 질문 자체가 외로워지는 순간이 많다.
우습게도, 아이의 반 담임선생님조차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선행시킬 때가 아니에요. 수학학원 보내지 마세요.”
나만 이 말을 들은 게 아닐 텐데, 왜 부모들은 여전히 선행학습을 선택하게 될까?
요약해서 말하자면 ‘불안’, ‘시장’, ‘제도’, ‘또래’—이 네 가지 착시 때문이다.
“다른 애들은 다 하는데 우리만 안 하면 어쩌지?”
이 질문은 부모 마음의 핵심에 꽂힌다. 특히 초등 고학년, 중학교에 가까워질수록 불안은 현실이 되기도 한다. 정보를 먼저 접하고 움직이는 부모가 ‘성공’할 것 같다는 착각이, 선행을 강요한다.
사교육 시장은 ‘선행’으로 굴러간다.
아이를 빠르게 앞서 가게 한 후, 반복 학습을 통해 실력을 다지라는 논리.
입시가 존재하는 이상, 학원은 선행을 마케팅 삼고 매출로 연결시킨다.
교육부는 ‘창의력’을 말하지만, 현실은 ‘서열화된 시험’이다.
시험은 선행을 한 아이가 유리한 방식으로 구성된다.
부모들도 이 모순을 인식하지만, 결국 “현실에 맞춰야지”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아이 친구들이 모두 학원에 다닌다면, 부모의 고민은 더 깊어진다.
“우리 아이만 안 시켜도 될까?”
이 질문은 매번 부모의 마음에 죄책감을 던진다.
그래서, 선택의 문제다.
부모가 되기 전,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기 전에 먼저 나의 교육관이 뚜렷해야 한다.
나는 단순하고도 확고한 교육관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질문할 수 있는 삶.
그것이 내가 아이에게 심어주고 싶은 가치다.
선행을 하지 않으면 확실히 얻는 것이 있다.
바로,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이다.
많은 부모들이 “초등 저학년엔 독서 습관이 제일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그 독서 시간을 아이에게 주지 않는다. 학교를 마치자마자 학원으로, 숙제로, 다시 학원으로.
놀기도 바쁜 이 나이에, 독서는 틈새 시간이 되어버린다. 그 짧은 틈에 아이가 책을 읽기 바란다면, 그건 어른조차도 못할 일이다.
반면, 선행을 하지 않으면 잃는 것도 있다.
바로, 당장의 학습 격차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는 수학과 과학은 상위권이지만 영어는 아직 미숙하다. 어릴 적부터 영어학원에 다닌 친구들이 동화책을 술술 읽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불안하다.
하지만, 아이는 자막 없이 애니메이션을 즐겨 본다.
처음 듣는 단어도 문맥을 따라 유추해 낸다.
듣기가 자연스러운 이 경험은, 나중에 영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아이 스스로 쌓아가는 시간이다.
‘지금’의 완성보다, ‘필요’의 뿌리를 심는 일이 내겐 더 중요하다.
정세랑 작가의 <목소리를 드릴게요>에는 치매 환자를 위한 기억력 증진용 알약이 개발되는데, 그 신약이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활용되는 현실적이면서도 웃지 못할 상황이 그려진다. 이 얼마나 눈으로 그려지는 현상인가.
몇 시간 동안 눈으로 보는 장면이 뇌게 새겨지는 효과가 수험생들에게 인기를 끈다는 설정인데, 모두가 비슷한 조건이 되자 암기력은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오픈북이 조건이 된 시험시간에 아이들의 경쟁력은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조리 있게 서술해 내는가’가 된다.
AI가 기본 툴로 자리 잡아가는 현시대에 정세랑의 이 단편소설은 지금 시대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를 되묻게 해 준다.
나는 아이가 경쟁의 도가니에 몰려들기 전에 자기 자리에 온전히 서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아이로 자라려면, 부모가 먼저 자신의 교육관을 확고히 가져야 한다.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하는 건 외롭다. 하지만 그 길 끝에서 아이의 ‘자기 삶’이 시작된다면, 그 선택은 충분히 의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