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의심하다
그런데 첫째가 열 살, 둘째가 세 살이 된 올해 들어서는 뜻밖에도 ‘행복’에서 멀지 않은 일상을 누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늘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정체된 것 같아 불안했는데, 반복되는 육아의 하루에서 만족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이 낯설게 다가왔다.
최근 들어 “참 육아를 재미있게 하는 것 같아.”, “예쁘게 살고 있는 게 다 보여요.”라는 말을 들었다.
첫 번째 말은 엄마가 해주셨다. 순간의 기쁨에 집중하는 것 같다고, 그래서 전체적으로 볼 때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두 번째 말은 처음 만난 이웃 아주머니에게 들었다. 아이들과 마당에서 노는 모습을 종종 보셨다며 “예쁘게 사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말들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변해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변화의 첫 번째는 ‘나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화내지 않으려 애쓰기보다, 화를 내고도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완벽한 보호자가 되려하기 보다, 감정을 가진 한 사람이 널 사랑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아이들에게 보여주려 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조심하고 조율하는 방법을 배워갔다.
또 하나의 변화는 ‘현재에 충실한 태도’였다.
새벽 두 시까지 버티며 자유를 지키려 했던 나는 하루 네 시간 남짓한 수면으로 몸을 혹사시키고 있었다. 결국 건강이 무너지고, 사진 속 낯선 모습을 외면하다가 어느 순간 잠을 늘리기로 결단했다. 자정을 넘기기 전에 눕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시작했다.
새벽의 몇 시간을 내려놓자 오히려 하루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른아침 내가 먼저 열어둔 하루에 입장하는 아이들에게 한결 느슨하고 여유롭게 품어줄 수 있었다.
육아라는 시간은 종종 ‘정체’로 보인다.
하지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기에, 나는 내 자신을 더 깊이 바라볼 수 있었다.
청년 시절의 나보다 조금은 유연하고, 조금 더 단단한 어른으로 다듬어질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흐르는 건 시간만이 아니었다. 멈춰 선 듯한 그 자리에서, 아이가 키가 자라듯 나는 내면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