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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는, 부모만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

아이와 대화를 오래 이어가기 위해 지금부터 하고 있는 것

열 살, 초등학교 3학년.

이쯤이면 슬슬 사춘기의 그림자가 비치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합니다. 아직은 귀엽고, 여전히 재잘재잘한 말벗이지만 사춘기라는 문턱 앞에서 나도 조금은 긴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춘기가 단순히 ‘무서운 시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변화의 시기라고 하고 싶어요. 그래서 책도 찾아 읽고, 여러 사례도 찾아봅니다.

예능을 잘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금쪽같은 내 새끼〉를 꼭 챙겨보는 이유도 같은 일환입니다. 특히 사춘기 자녀가 나오는 회차는 유심히 분석해 봐요. 어떤 지점에서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엇갈리기 시작하는지를 파악해 보곤 합니다.


보다 보면 공통점이 보이곤 합니다.

첫째,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는 점.

둘째, 부모와의 소통 자체가 원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이가 부모의 방식에 익숙해진 듯 보이다가, 자아가 더 또렷해지는 시기에 충돌이 시작됩니다.


물론, 자율과 애정을 충분히 주며 키운 가정에서도 갈등은 생깁니다. 하지만 완전한 단절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죠.


전쟁을 앞두고 방어막을 세우듯, 다가올 아들의 사춘기를 앞두고 ‘관계의 기반’을 쌓아가는 요즘입니다.

방법은 단순해요.

아들과 자주, 자주, 가능한 한 즐겁게 이야기 나누기.

엉뚱한 말도 받아주고, 황당한 농담도 웃으며 들어주고, 아이가 원할 때는 진지한 얼굴로 맞장구를 쳐줍니다.


제가 원하는 목표는 하나입니다.

“엄마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들어주는 사람이다.”

이 인식이 아이 안에 자연스럽게 심어지는 것이요.


사춘기는 부모의 사랑을 거부하는 시기가 아닙니다.

단지, 거리를 조정해 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죠.

부모가 싫어진 게 아니라, 혼자 살아갈 준비를 하는 시기입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사랑을 원합니다.

좀 더 성숙한 방식의 표현이 필요합니다.


그 시기가 오기 전에, 아이가 내미는 말의 조각들을 놓치지 않고, 여유 있는 자세로 어떤 주제로든 이어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쌓인 신뢰는, 언젠가 올 큰 변화의 조짐을 조금 더 빨리 감지할 수 있게 해 주리라 믿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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