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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다 괜찮아진다

사소한 결점에 목매지 말자

또 다.

아들의 칫솔을 교체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질겅질겅 씹혀있는 칫솔대.

일주일이 지나기가 무섭게 또 플라스틱이 흐물흐물해져 있다.

“씹지 좀 마, 적어도 한 달은 써야지.”

“지구를 사랑한다면서. 이거 다 플라스틱이야. 버려지면 쓰레기 산 되는 거라고.”


초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 얼굴, 그렇다. 내 말은 공중분해 되고 있었다. 이가 상하니까 안 하면 좋겠다는 권면도, 지구를 위하자는 회유도, 몇 개월이 지나도록 먹히지 않자 나중에는 내 말을 무시하는 건가 싶어 화가 나기까지 한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을 누르며 그냥 일주일에 한 번씩 교체해 주자는 마음으로 포기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칫솔 상태 확인을 하던 어느 날, 매끈한 칫솔대를 보았다. 신경 쓰지 않는 사이에 치아로 질겅거리던 습관이 사라진 것이다.

놀라워하며 아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쑥스럽게 웃으며 뿌듯해한다. 하지만 여전히 칫솔은 교체해야 했다.

칫솔대를 질겅거리던 습관은 칫솔모로 옮겨간 건지, 치아 닦는 칫솔이 신발 닦는 용도의 칫솔과 모양이 매우 유사하다.


칫솔대 무는 습관이 사라지는 것을 봤지만, 칫솔모 무는 습관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또다시 회유하고 권면하기를 몇 개월. 말하기도 지쳐서 아무 말 없이 칫솔을 교체해 주던 어느 날 일주일이 지났는데 그다지 벌어지지 않은 칫솔모를 마주했다.

이번에도 스스로 그만두게 된 것이다.


순간, 아들연구소의 최민준 소장이 한 말이 떠올랐다.

“아이가 받는 상처의 대다수는 작은 문제를 교정하려다 생긴다.”

별거 아닌 나쁜 습관은 그저 반복된 권면과 포기, 그리고 기다림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뜻하지 않은 곳에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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