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는 좋지만 회사에서 만난 딸기는 싫어!

싫은 일을 대하는 자세

by woo

계약직으로서 영원히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허드렛일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그 누구도 하기 싫어하며 누가 했는지 알지도 못할 그런 일?

옛날이야 신입사원이 주로 그 업무를 맡아서 했지만 요즘은 계약직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그 일은 계약직이 맡아하게 된다. 심지어 인턴도 금턴들인지라 그런 업무를 해서는 안 되는 룰이 정해져 있다. 계약직만 몇 년째 전전한 나는 회식 때 고기를 굽는 일, 탕비실 정리하는 일, 직원들의 간식을 위해 장을 보는 일, 누군가 과일을 사들고 오면 과일을 씻어 먹기 좋게 자르고 나르는 일, 이 모든 일들이 나의 것이 되었다.


나는 솔직히 집에서도 그 일을 즐겨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기를 일으키며 어떻게든 안 해볼 요량으로 배달 음식을 시키고, 과일도 씻기고 껍질 벗겨 음식 쓰레기 버리는 일이 귀찮아 포기할 만큼 ‘게을이’다. 하지만 어쩌랴. 회사는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없고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다만 몇 년을 일해도 여전히 그 일을 내가 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끔 퍽 서러울 때가 있다.


혼자 탕비실에서 열심히 씻고 자르고 나르고 정리하다 보면 정작 나는 그들의 회의에 참여하지 못해 못 먹을 때가 많고, 겨우 한 입 먹어볼라치면 자리를 파하고 정리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럼 그 정리의 몫도 오롯이 나의 것이다. 어제 입사한 신입이 눈치라도 있으면 같이 거들어 주기도 하지만 다른 직원들이 자리로 돌아갈 때 같이 싹 가버리면 참 얄밉기도 했다. 꼭 명절에 홀로 일하는 부엌데기 며느리 같았다. 이래서 내가 결혼을 하기 싫어하는 건지도....... 아, 요즘은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고도 한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과일을 사들고 오는 손님이 참 싫었다. 특히 눈치 없이 부장이 ‘여름이니까 수박이나 사 먹지’ 하는 소리를 할 때면 그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집에서 가족이랑 오순도순 먹으라고 좀!! 먹는 달콤함보다 그 무거운 수박 낑낑 거리며 자르고 특히 다 먹고 나서 직원들이 여기저기 뱉어 놓은 수박씨와 줄줄 흘린 국물들을 치울 생각에 부아가 먼저 치민다고 할까. 홀로 수박을 자르면서 참 많이도 ‘나는 여기서 지금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하지만 회사에서 과일 먹기 금지 법령을 만들 수 없다면 현실을 인정하고 어떻게 하면 편안한 마음으로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이 더 건설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런 생각을 내게 안겨준 사람은 예전 직장에서 참 닮고 싶은 상사 덕분이었다. 얼굴만큼이나 마음도 예뻤던 탓에 과일 씻는 일에도 솔선수범했던 상사였다. 오히려 내가 그의 보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상사는 그 일을 하면서도 큰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날 때부터 천사인 건지 아님 내가 악마인 건지. 어쨌든 그것보다 더 재밌는 사실을 하나 배웠다는 것이 중요하다.


상사는 과일을 씻으며 내 입에 딸기를 한 알 넣어 주었다. 냠냠냠. 맛있다! 나 바본가? 그동안 왜 단 한 번도 그 과일을 먹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오로지 그 하기 싫은 일을 빨리 완수해버려야겠단 생각만 하고 있을 때, 상사는 가장 맛있고 예쁜 것을 골라 제일 먼저 맛을 봤다. 이런 신세계라니! 그 이후로 어쩐지 나는 특권을 가진 것만 같았다. 물론 여전히 과일 씻기는 귀찮고 치우는 건 더 귀찮지만, 그래도 가장 예쁘고 신선한 것을 제일 먼저 맛볼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위로가 되었다. 간식을 사러 갈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먹고 싶은 거 먼저 고를 수 있는 기회라고 받아들이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비록 내 위치가 바뀐 것은 아니지만 결국 내 마음가짐에 따라 내 처지를 바꿀 수는 있었다.


모든 계약직들이여! 혹은 신입, 인턴들아, 가장 맛있는 딸기 한 알을 당신 입속에 허하라. 두 알 먹어도 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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