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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 Mar 31. 2021

어떤 시각으로 살 것인가

최후의 보루, 희망

'늘 그렇지만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는 미래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젊은 세대는 희망을 바라보지만 나이 든 세대는 상실을 생각한다.'



마우로 F. 기옌의 <2030 축의 전환>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다. 늘 그렇지만 언론과 미디어는 대개 절망적인 기사를 쏟아낸다. 흙수저, 이생망 등의 말들은 20대와 30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한때나마 자조적으로, 그러나 심히 무겁게 다가온 단어들이다. 과연 이건 누구의 시각일까? 젊은 세대는 희망을 바라본다고 했는데 어째서 우린 스스로를 흙수저라 칭하며 절망을 안고 살아갈까? 생물학적 나이와 상관없이 마음이 부쩍 늙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것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대개 긍정적인 것이 좋은 것이고 부정적인 것은 나쁜 것이라는 이분법적인 생각을 하게 마련인데 때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것이 상황에 더 적합할 때가 있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마냥 긍정적인 것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례를 보여준다. 이는 미군 장교인 스톡데일의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스톡데일 장교가 포로로 잡혀 대략 8년 간의 수용소 생활을 할 때 곧 풀려날 것이라 믿었던 동료는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상황이 쉽지 않다고 생각한 스톡데일은 끝끝내 수감생활을 버티고 살아남았다고 한다.



무조건적인 낙관이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왔음을 시사한다. 포로수용소에서 크리스마스에는 풀려날 거라고, 다음 추수감사절에는 풀려날 거라고 믿던 동료들은 반복되는 좌절에 그만 자신의 목숨까지 사그라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어려운 시기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경험 삼 반복된 실패가 주는 좌절감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다. 솔직히 그런 좌절이 반복되면 차라리 그냥 도망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잠깐 도망친다고 해서 영원히 숨어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도망쳐서 절망의 나락으로 뛰어들 것이 아니라면 잠깐 피신해 숨 고르기를 하는 것도 좋다. 다만 우리는 희망이 있는 곳으로 발을 내디뎌야 한다.



젊음을 바쳐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목표 달성에 실패했을 때, 그저 불행했다, 하지만 더 이상 다른 목표도 없고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을 땐 불행하고 거기에 참담하기까지 했다. 즉, 내 삶에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히려 계속 실패하더라도 목표가 있는 시절이 그리웠다. 그때 알았다. 불행하지만 희망은 꼭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희망을 잃는 순간, 불행한 나도 끝이라는 것을. 불행해도 괜찮고, 도망쳐도 괜찮다. 희망이 있다면! 젊은 세대가 희망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는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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