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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 May 18. 2021

습관적 외로움

외로움의 유용성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다. 그래서 항상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아무도 없었고, 그럴 때면 늘 TV를 켰다. 그땐 몰랐다. 그게 습관적 외로움이었다는 것을. 혼자라는 걸 너무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그 고요한 소리가 싫었다. 호주로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내가 늘 TV를 켜 놓은 이유, 늘 무언가를 켜야만 했던 이유.




하우스키핑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훤한 대낮인데도 뭔가 외로웠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노트북을 켰고 노트북은 TV를 대신했다. 습관처럼 노트북을 켜 놓고 멍하니 앉아서 '뭘 해야 하지?'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역시 할 일이 있어서 노트북을 켰다기보다 외로움 때문에 습관적으로 먼저 노트북을 켜 놓고 해야 할 일을 억지로 찾아내려고 했던 탓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전압이 달라 체기를 견뎌내지 못한 노트북이 급기야 사망하고 말았다. 아니, 이게 이렇게 쉽게 죽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내게 무언가 깊은 깨달음을 주기 위해 몸 져 누웠나 보다.




어쨌든 노트북이 없는 호주에서의 삶은 우울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맥주와 함께 노트북으로 영화를 한 편 돌려 보며 고단한 밤을 지새우는 게 낙이었기 때문이다. 불안한 마음을 가만히 들어주는 친구이, 함께 웃어주는 가족며, 조용히 노래를 불러 줄 때는 연인이기도 했던 노트북이여, 이렇게 안녕이라는 말도 없이 떠나버린 그대가 야속하기도 하지만 그대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기엔 내 지갑이 한없이 야위 그대로 떠나보내야만 했던 . 수리비도 새 것을 장만하는 비용과 맞먹고 더군다나 출국일자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기에 전압도 맞지 않는 노트북을 사는 일은 포기했다. 결국 약 한 달가량 노트북 없이 살아가자고 결심한 나는 철저하게 처절할 만큼 외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겠다는 캔디의 다짐으로 살아가며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나는 살만해졌다. 노트북이 사라진 대신 책을 읽었고 싫어하는 요리 시간을 일부러 늘려 보기도 했고, 밖에서 친구들과 수다 떠는 시간을 많이 가져도 봤다. 생전 하지 않던 청소도 해봤다. 그렇게 나는 공허한 시간을 나름 알차게 채워갔지만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영화도, 드라마도, 오락 프로그램도 아닌, 글이었다. 웃기게도 평소에는 끄적이지도 않았으면서 노트북이 없다고 생각하니 뭐가 그렇게 아쉬웠을까? 글이 너무나도 쓰고 싶었다. 물론 노트에 글을 꾹꾹 눌러쓸 수도 있었지만 이미 신문물에 길들여진 나는 손글씨보다는 노트북이 편했다. 우습게도 철저하게 외로워진 바로 그때에 나는 내 갈망을 하나 발견했다. 글을 쓰는 것.




혹시 살면서 인지하지 못하는 찰나에 하게 돼버린 행동, 혹은 떠오른 생각이 있는가? 불현듯, 무의식적으로. 어쩌면 그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까? 살면서 꿈은 참으로 많이 바뀌었지만 거의 다수가 주위의 시선에 휩쓸린 꿈이었다는 것을 안다. 사실 승무원도 전 세계를 다녀보고픈 열망에서 시작된 것이다. 물론 그것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꿈을 꾼다는 것은 멋진 일이며 그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삶도 존경스럽다. 그런데 이렇게 외로움 속에서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나 꿈이 어쩌면 내가 진짜 열망하는 것 아닐까? 외로움이 나에 대해 찰하는 시간을 선물한 셈이다. 에 외로움이 필연적인 이유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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