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 May 28. 2021

때론 자기 합리화가 필요하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정신

욕실에서 까꿍 하며 삐죽 올라온 흰 머리카락을 뽑으면서 아직 흰머리가 날 나이는 아닌데 싶은 상심과 동시에 뭔가 내 마음을 심하게 압박하는 것이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역시 어려움은 한꺼번에 몰려오고 행복은 찰나처럼 스쳐간다. 행복이 떼를 지어오고 어려움은 훠이훠이 달아나면 좋으련만, 어디 인생이 내 맘대로 되는 것이던가. 또다시 위기가 왔다. 물론 피상적으로 보자면 그렇지만 왠지 자꾸 이건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위기가 곧 기회란 말을 그냥 믿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요 며칠 마음이 폭풍의 소용돌이를 겪다가 다시 평온해졌다. 평온한 척일 수도 있지만 그냥 오늘의 평온함을 느끼기로 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바로 자기 합리화라는 것인가 잠시 생각에 빠졌.




자기 합리화라는 말이 대개 부정적이고 특히 실패라든가 일이 어긋나고 난 뒤에 하는 행동이라서 뭔가 비겁한 변명처럼 들리곤 한다. 솔직히 진짜 변명일 수도 있. 그런데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채찍보다는 당근 같은 위로. 뭐랄까, 더 이상 지쳐서 쓰러지면 안 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그런 거. 일찍이 성공한 사람들(그래 봤자 좋은 회사에 취업한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자꾸 실패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저 단순히 능력이 없거나 죽을 만큼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느끼기 쉽다. 그 사람들이 인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람이기에 자신의 경험과 성공으로 확립된 기준으로 판단하기에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한다. 나 역시 대학 졸업 후 한 방에 취업했다면 현재의 나 같은 사람을 업신여기 않았을까 아찔하다. 행히 그런 자만은 비켜갔고 지금의 나는 안다. 자기 합리화를 해서라도 나를 응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아침에 출근하는 데 늦잠을 자서 허둥지둥 옷을 입다가 셔츠 단추를 위에서부터 잘 못 채우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르고 끝까지 다 채우고서야 잘 못된 걸 알았다. 바빠 죽겠는데 왜 옷까지 말썽인지 짜증이 난다. 어떡하랴, 다시 다 풀고 똑바로 채우는 수밖에. 그러느라 출근이 더 늦어졌다. 사람의 인생도 이런 거 아닐까? 어떤 이는 일찍 기상해서 여유롭게 거울을 보며 첫 단추부터 잘 꿰어서 끝까지 아무 문제없다. 그래서 늦잠을 잤다는 사실못마땅하겠지만 개중에는 생계를 위해 밤낮으로 일하느라 지친 몸 때문에 늦잠을 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두 번째로, 그 바쁜 아침에 굳이 단추 많은 셔츠를 입었냐 비난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셔츠가 유일한 옷일 수도 다.




물론 내 경우는 생계 때문에 밤낮없이 일하느라 늦잠을 잔 것도, 티셔츠가 없던 것도 아니라 나를 탓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또 용서한다. 왜냐하면 이미 일어난 일이고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내 삶이 더 나락으로 빠지도록 두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바라는 건 마음의 안정이다. 그래야만 늪으로 계속 빠져들지 않을 것 같다. 속 단추를 잘못 채우는 실패를 했기에 그때마다 나를 비난하고 채찍질했다면 단추를 다시 풀 힘도, 다시 올바르게 채울 힘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보았는가, 이것이야말로 자기 합리화라는 것이다!!




누군가의 성공담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한다고 해서 내 성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대는 너무 빨리 변하고 있고 사람들 간의 다양한 격차가 극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하나의 원칙을 보편적으로 적용하기란 상당한 부작용이 따를 것 같다. 이런 때에는 그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정신으로 내 마음을 살펴야 한다. 내가 못나고 부족해서 자꾸 목표 달성이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직 때를 못 만나서라고 최면을 걸어 보자. 하지만 왜 그래야 한다? 그때를 만날 때까지 혹은 그때를 앞당길 수 있게 계속 노력할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설마 아무것도 안 하고 때를 기다리는 도둑놈 심보는 아닐 것이라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습관적 외로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