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얼마 전 일반적인 회사원은 하기 힘든 일을 하나 저질렀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과연 이 법은 얼마나 효력을 가질까? 또한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할 용기 있는 자는 얼마나 될까? 오늘 그 경험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사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인 생겼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걸 어디다가 어떻게 신고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회사 내부 신고를 택했다. 누구나 알 만한 공공기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어서 일반 소기업에 비해 이런 제도를 활용하기가 수월하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 단지 호기심으로 선량한 사람을 가해자로 신고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 이름 상사, 인사고과를 무기 삼아 온갖 패악질을 부리는 너란 상사. 그렇게 폭언을 내뱉지 않았다면 그냥 속으로만 싫어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디서 주워 들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면 싫어할 이유를 만들어 주라고. 그래, 내 너를 위해 확실한 또라이가 되어주마.
때마침 회사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제도를 홍보했다. 그들에게도 실적이 필요할 테고 시행된 법안에 대한 성과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하지만 안다.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 꾸며낸 환상 같은 것일 뿐 그 속은 허무한 쭉정이 같은 것을. 벌써 이 한 마디가 결과를 말해주는 것 같은 건 앞선 생각일까? 어쨌든 신고를 하게 되면 가해자는 모르게 피해자 중심으로 조사가 이루어지고 주변 동료들도 조사(?)를 받게 된다. 그리고 사내에서 노무사와의 회의과정을 통해서 1차적 결론을 내리고, 괴롭힘 인정이 되면 그다음 절차를 밟아 징계처벌 여부와 그 정도를 결정하게 된다.
제일 처음 서면으로 신고서를 작성했고, 머지않아 관련 부서에서 만남을 요청해 왔다. 서면을 토대로 2시간가량 아주 길게 가해자의 행위에 대해서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 분위기라는 것이 참 무겁고 숨이 막혔다. 뭔가 괴롭힘을 당한 건 나인데 꼭 내가 잘못해서 그런 조사를 받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랄까?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 사실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내가 굳이 신고를 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벌 받는 기분을 느끼진 않아도 되었겠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더 고통은 동료들의 조사였다. 사실 이게 더 큰 심적 압박을 줬다. 몇 사람을 불러서 조사를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이들은 내가 가해자를 신고했다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동료들 중 누군가 비밀 서약을 어기고 상사 혹은 기타 동료들에게 발설한다면 나는 2차 피해의 단상에 오른다. 예상했듯이 안타깝게도 모든 직원이 이 사실을 다 알게 되었다. 그 기간은 신고 후 단 이틀이었을까? 상사마저도 알게 되었다. 물론 상사와 나는 서로 모른 척할 뿐이다.
평소에 회사생활 잘했다면, 물론 정말 잘했으면 상사에게 밉보이지도 않았겠지만, 어쨌든 동료들이 적어도 그 상사에게 가서 비밀을 발설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 동료는 상사와 등을 질 수 없다.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사람이니까. 때론 상사에게 유리한 진술을 할 수도 있다. 나야 워낙 회사 생활 못해서 그렇지만, 아무리 믿을 만한 동료라고 해도 그 믿음은 완전하지 못하다. 그들은 자신이 가해자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게 두려운, 아주 연약한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나의 사건은 정식 절차도 한 번 밟아보지 못하고 괴롭힘 불인정으로 일단락되었다. 내가 아무리 괴로웠어도 객관적으로 인정될만한 괴롭힘이 아니면 인정되지 않는다. 과연 어디까지가 인정될 만한 괴롭힘인가. 폭행을 당하고, 자살을 하면 인정받을 수 있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정말 회사 건물에서 뛰어내리고픈 충동이 든 적도 있었다. 하긴, 그럼에도 처벌받지 않은 인간들도 있는데 거기에 비하면 나의 경우는 아주 티끌 같은 괴롭힘이었다. 그 티끌에 내 마음은 탱크가 휩쓸고 간 것 같은 황폐함이 남을지언정.
여전히 그 상사와 뒤에서 쑥덕거리는 동료들과 일을 해야 한다. 그 고통을 말해 무엇하랴.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절대 이런 신고를 하지 않으리라 마음의 문을 닫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목적으로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사실 이 모든 상황을 예상했다. 당연히 모두가 알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심지어 신고 센터 직원이 회사 내부 직원이기 때문에 내 상사와 동기일 수도, 혹은 학연으로 엮인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상사가 실시간으로 내가 상담한 내용들을 다 아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상사를 신고한 것은 과거 괴롭힘을 당하다 억울하게 퇴사했던 바보 같은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음과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심 상사가 알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는 계약직이라 승진할 일도 없고, 소위 무서울 게 없는 사람이라서 이렇게 저지를 수 있었지만. 정규직이라면 앞뒤 다 재어보고 골치 아플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잃지 않고 지켜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