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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 Dec 16. 2021

전방 500미터에서 U턴하세요

돌다가 돌겠지만 그래야 인생도 돌아가니까

길눈이 어둡다는 건 생활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말았다. 모처럼 고향에 다녀오는 길에 밤이면 운전하기에 눈이 피로하지 않을까 하여 오후 늦게 길을 나섰다. 사실 난 알아주는 길치다. 방향감각은 한 스푼의 능력도 얻지 못하여 매번 어딜 갈 때마다 길 잃은 고양이처럼 골목길을 헤맨다. 방금 들어갔던 가게에서 나와도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멈춰 서서 고민하는 게 일상이라 이젠 놀랍지도 않다. 운전을 하기 전까지는.




운전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내가 길치일 뿐만 아니라 말귀도 어두워 내비게이션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다. 왜 뻔히 길을 가르쳐 주는데도 나는 이상한 골목으로 돌진해버리는 것일까, 왜 100미터 앞이 이 앞인지, 저 앞인지 분간을 못하는 것일까. 단순히 길치인 것보다 내비게이션 말을 도통 알아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비한 일이다. 그래서 결국엔 고속도로를 타고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달렸다가 또다시 돌아와서 또 한 번 잘못 고속도로를 타고 스스로에게 살의를 느끼며 다시 돌아오는 참사를 겪었다. 정말 오만 가지의 생각이 스쳤다. 나는 왜 이럴까, 난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이대로 그냥 황천길로 달려볼까 하는 끔찍한 생각에 까지 이르며 왜 이렇게 극단적일까 또 자신을 탓한다.




한 번에 내비게이션 말을 잘 알아듣고 목적지까지 가는 일은 손에 꼽히게 희귀한 일이다. 아무리 미리 지도를 펼쳐 사전 답사를 해도 별반 달라지는 일이 없다. 그냥 타고남이다. 이렇게 지리적 능력을 가져가셨다면 신은 내게 다른 능력이라도 몰빵 해서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신은 보고 있나? 도대체 어디에 없어진 능력을 추가했는지 알려는 주셔야지. 그냥 깜빡하고 방향감각을 넣지 않은 실수라 하기엔 내 삶이 너무 고단 하단 말이다. 자율주행 차라도 타야 하나 싶다. 얼마나 더 과학은 발전해야 나 같은 모지리들이 편안해질까. 근데 문득 나 같은 모지리는 이 세상에 또 없을 것만 같다.




그렇게 쓸데없이 톨비를 내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거리에 름을 흩뿌리 허무하게 시간을 낭비하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도 참 나답게 살았다 싶었다. 그간 삽질했던 삶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이 경험은 대체 내게 무얼 남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서 실패했다고 여겼던 많은 순간들이 사실 아주 의미 없는 것은 아니란 생각을 하며 살았다. 실제로도 그랬고, 어떤 식으로도 내게 깨달음을 남겼다. 그런데 이렇게 길을 헤매는 건... 역시 손해 보기 싫 심리에서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리고 찾은 답은 안타깝게도 인생은 한치의 손해도 없이 꾸려 나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란 점이다. 아무런 득도 없이 방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때론 무모함 때문이든, 무지함 때문이든 어떤 날은 방황하고 손해 보는 날이 있을 수 있다. 그게 억울하고 화가 나서 거기 멈춘다면 영원히 목적지도 아닌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할 뿐이다. 길을 자주 헤맨 사람으로서 다행인 점은 방황하더라도 어떻게든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U턴을 할 수도 있고 빙빙 돌아서 갈 수도, 막다른 길이 나와도 후진할 수 있다. 누구나 새롭고 낯선 길을 가다 보면 길을 잃기도 하지만 종국엔 모두 목적지에 다다른다. 그 사실이 중요하다. 어쩌면 아주 아주 멀리 본다면 그 방황도 삶의 한 조각으로써 필요한 퍼즐이었는지도 모르니까. 매일 밥 먹듯 유턴을 하는 나도 사는데 힘들 내시게.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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