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는 12살, 사랑스럽고 순둥한 러시안 블루였다.
병원에 내원한 쿠로는 기력이 매우 떨어져 있고, 갑자기 구토를 하루에 4~5번 정도 할 정도로 심했고, 밥은 아예 먹지 못했다. 앙상한 갈비뼈 밑으로 배가 상당히 빵빵해져 있었다. 복부 초음파를 보니 배 안에 복수가 가득했고, 장 쪽에 악성 종양으로 의심되는 5cm가량 크기의 종괴가 있었다. 장 분절도 넓게 비후 되어 있었다. 복수천자 후 세포 검사를 해보니 림포마 (혈액암 일종)로 진단되었다. 암이 생긴 지 오래되었는지, 전반적인 혈액검사 수치도 좋지 않고, 장 상태도 좋지 않았다.
"기력이 없는 게 나이가 들어서 그러는 줄 알았어요.. 배가 불룩해 보여서 온 건데.."
스테로이드 약만 복용할 경우에 항암을 하지 않으면 기대수명은 1~2개월 정도이다. 항암을 했을 때 반응성이 좋은 경우 기대 수명은 6개월에서 1년 정도이다. 반응성이라는 것이 항암을 하지 않으면 알기 힘들다. 하지만 쿠로는 이미 증상이 심하기 때문에 기대수명이 평균보다 적을 가능성이 높았다.
"조금만 더 고민해 볼게요.."
보호자님들은 쿠로가 12살로 나이가 많은 점이 마음에 걸려서인지, 항암 진행 여부를 선뜻 결정하지 못하셨다. 그사이 쿠로는 입원했고, 3일이 지났다. 체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좋지 않은 징후다. 이어서 혈압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온을 하고, 혈압을 올리는 약물을 투여해도 체온과 혈압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항암을 하지 못하면 사실상 가망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컨디션이면 항암을 하기 힘들다. 쿠로 상태는 점점 악화됐고, 옆으로 누운 채로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쿠로를 보고 보호자님은 결국 안락사를 택하셨다. 그렇게 또 안타까운 이별을 조력하였다.
3주쯤 지났을까? 쿠로 보호자님들께서 예고 없이 찾아오셨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며, 진료실로 보호자님들을 안내했다. 다행히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조심스레 말문을 여셨다.
"표정이 한결 괜찮아 보이시네요 보호자님.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다시 인사드려야지 하면서도, 이제야 오게 되었네요." 라코스테 양말이 담긴 종이가방을 건네시며, 옅은 미소를 지으셨다.
"동생은 사실 쿠로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빨리 보내주길 바라고 있었어요. 제 욕심이겠지만 저는 계속 치료를 지속하고 싶었어요. 이게 정말 쿠로를 위한 건지. 저를 위한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보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애써 편안해 보이려 했던 보호자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며 눈물이 고였다. 눈물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마치 여기서는 꼭 울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오신 것처럼.
"여기 동물 병원에 오면 특유의 냄새가 싫었어요. 하지만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오게 되었어요. 마지막 가는 길에 쿠로 잘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그저 최대한 온 신경을 집중하여 들기 위해 노력했다.
쿠로의 어린 시절 사진들과 어떻게 집에 오게 되었는지. 쿠로만의 특이한 습관, 동거묘들과 관계 등등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셨다. 반쯤은 행복과 반쯤은 그리움, 슬픔이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안녕히 계세요." 그 마지막 인사에서, 일종의 후련함도 느껴졌다. 그런 모습이 나에게는 안락사를 진행했던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듯했다. 미소 지으며 인사하시는 모습에 나도 미소를 지으며, "보호자님도 안녕히 가세요. 건강 잘 챙기시고요. 다른 아이는 여기로 올 일이 없으면 좋겠네요."라는 공허한 말씀을 드리고 말았다.
간혹 아이가 떠나간 지 몇 주 정도 흐르면 찾아오시는 보호자님들이 계시다. 눈물을 머금고 국화 한 송이를 들고 오시는 분들. 먹을 것을 들고 애써 힘차게 모습으로 오시는 분들. 마음을 담은 편지를 전해주시는 분들. 아마 아이를 온전히 보내 주는 여정 중 하나이지 않을까? 그들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기를 바라본다.
이야기의 강아지 또는 고양이 이름은 가명입니다. 정보 보호를 위해 약간의 각색이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