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봇 Nov 09. 2024

돌아오지 않는 회신

미달이는 살이 포동포동하게 찐 포메라니안으로, 숨을 헐떡이며 응급 내원했다. 얼굴은 작고 털이 복슬복슬한 포메라니안답게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살이 많이 쪄서 한 눈에도 비만해 보였다. 연세가 조금 있으신 보호자님은 중년 남성분이셨고, 풍채가 좋고 덩치가 컸는데, 그 손에 안긴 미달이는 매우 작아 보였다. 


미달이는 코가 막힌 듯한 소리와 함께 숨을 헐떡이며 입을 벌려 숨을 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했다. 혀는 파랗게 변해 청색증 증상이 보였다. 산소를 공급하고 진정제를 투약한 후 호흡이 조금 안정되었다. 청진을 해보니 다행히 심장병은 없어 보였다. 조금 호흡이 안정된 후 흉부방사선을 촬영했다. 폐와 심장크기는 괜찮았다. 연구개 노장 (입천장의 부드러운 부위인 연구개가 길게 늘어진 상태로, 숨 쉬는 입구를 막아 호흡을 하기 힘들어지게 할 수 있음)이 보였다. 


미달이는 전형적인 '단두종 증후군'이었다. 


포메라니안은 대표적인 단두종으로 짧은 주둥이와 좁은 기도로 인해 호흡곤란을 겪기 쉽다. 특히 콧구멍과 연구개 노장 문제로 인해 호흡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행히 미달이는 하루 동안 입원치료 후에 호흡이 안정되어 퇴원을 할 수 있었다.


"보호자님.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수술이 필요할 수 있어요. 미달이가 비만해서 숨 쉬는 것이 더 힘들어요. 이런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때문에 급사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지금 처방해 드린 약 잘 챙겨 먹여주시고, 체중 조절도 반드시 해주셔야 해요. 약에 진정제가 들어있으니 처져 보일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고요."


"미달이가 간식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맛있게 먹는 거 보는 게 제 유일한 낙이에요."


"당연히 그 마음은 잘 알지요. 그래도 비만 때문에 숨 쉬는 것을 힘들게 할 정도니깐, 꼭 체중 조절은 해주셔야 합니다. 약만으로는 관리하기가 힘들어요."



미달이는 그 이후에도 몇 번의 응급상황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잘 이겨냈고 체중도 잘 감량해 주셨다. 그렇게 1년 정도 넘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예약 시간이 다가와도 보호자님이 내원하지 않으셨다. 예약시간에 내원하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경제적인 이유, 이사, 주증상이 안정된 경우, 다른 동물병원으로 전원 하게 된 경우 등등.


보통 예약 후 내원하지 않아도 대부분은 '더 이상 안 오실 수도 있겠구나' 하고 큰 생각 없이 넘기게 된다. 그러나 미달이처럼 오랫동안 주기적으로 내원해 왔으나, 호흡곤란을 유발할 수 있는 질환을 관리 중인 아이들이 연락 없이 내원하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든다. 호흡곤란 환자들은 언제든 위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며, 아침까지만 해도 괜찮다가 갑자기 상태가 악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약 시간이 30분이 지나도록 보호자님은 오시지 않았고, 원무과에서 전화를 해보았지만 연락을 받지 않으셨다. "이럴 분이 아닌데?" 슬슬 걱정됐다. 다른 진료를 보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미달이가 생각났다.


잠시 시간 여유가 생겨서 보호자님께 전화를 해보지만, 역시나 전화를 받지 않는다. 


'바쁘신가 보지..' 하지만 영 찝찝했다.


다음 날 출근했는데 예약 변경이나 전화 회신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전화를 해봤지만, 역시 받지 않으셨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도록 다시 예약전화나 회신이 없었다. 그 이후에 연락을 하지는 않았지만, 불길한 예감은 지울 수가 없었다. 다른 이유가 아닌, 동물병원을 바꾸었기 때문이길 바라면서 미달이가 잘 지내고 있길 바라본다. 



이야기의 강아지 또는 고양이 이름은 가명입니다. 정보 보호를 위해 약간의 각색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전 16화 쥐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