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변과 설사를 한다는 진료 문의가 왔다. '아키타'라는 견종 이름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인턴 시절 아키타에게 크게 손을 물려 응급실에 갔던 기억이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벌써 수년 전이지만 그 장면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때 아키타의 이름은 '범'이었다. 범이는 25kg 정도 되었고, 늠름한 풍채에 큰 진돗개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는 아키타가 예전에 투견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당시 혈액검사 상 범이는 급성 신부전이 있었고 기력이 매우 떨어져 있었다. 기력이 없었지만 매우 사나웠기 때문에 넥칼라를 하고 목줄을 채워 놓은 채로 복부초음파를 봤었다. 나는 초음파를 보고 있는 범이를 보정하고 있었다. 범이는 처음엔 저항을 하다가 얌전하게 누워있는 듯했다. 그때, 왜인지 모르겠으나 넥칼라가 풀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범이의 입 속에 내 손이 들어가 있었다. 송곳 같은 이빨은 내 손에 큰 상처를 남겼고, 패인 이빨자국에서 피가 샘솟듯 흘러나왔다. 그리고 범이는 일어났으며 죽음의 공포를 느꼈는지 엄청난 공격성을 드러냈다. 같이 계셨던 초음파를 봐주시는 선생님께서도 크게 다쳤고, 여러 명이 붙어 간신히 범이를 제압했다. 그 후 초음파실 바닥에는 살인 현장을 방불케 하는 핏자국들이 선명했다. 목줄이라도 없었다면 정말 더 큰 사고가 날 뻔했다. 나는 물린 손은 덜덜 떨며 인근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그 일로 내 손에는 지금도 뚜렷한 흉터가 남아있다.
새로 진료를 보게 된 아키타는 겁이 매우 많아 보였다. 겁이 많은 경우 갑자기 물 수 있다. 식은땀이 났지만, 차분하게 필요한 검사들을 진행했고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다. 결장염에 의한 설사와 혈변이었고 대게 그런 경우 1~2주 정도 약을 복용하면 낫는 편이다. 그렇게 진료를 마무리했다.
아키타라는 견종 이름을 본 것뿐인데 생생하게 그때 장면이 떠올라서 당황스러웠다. 그때보다 지금은 더 능숙해진 것일까? 다음에 또 아키타가 오게 된다면 이 두 가지 기억이 같이 떠올라서 트라우마 같은 기억이 상쇄될까?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물리거나 긁히는 상처로 인해 작은 훈장들이 계속 생길 것이라는 점이다.
이야기의 강아지 또는 고양이 이름은 가명입니다. 정보 보호를 위해 약간의 각색이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