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살짜리 진돗개인 고리가 어제부터 혈액 섞인 구토를 했다고 내원했다. 젊은 남성분이 20kg 정도 되어 보이는 고리를 안고 들어오셨다. 고리는 백구였고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새하얀 털에 윤기가 흘렀다. 하지만 입가에 핏자국이 있었고, 숨쉬기 힘들어 보였다. 하얀 털에 대비되어 핏자국이 더 선명해 보였다.
"고리가 어제 피토를 하더라고요. 오늘은 피토가 어제보다 심하고, 시커먼 변을 봤고요. 이전까지 아팠던 적은 없었고, 어제까지만 해도 밥은 잘 먹었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밥을 아예 안 먹었어요. 그 좋아하던 간식을 줘도 고개를 돌리더라고요. 숨 쉬는 것도 어제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숨도 힘들게 쉬고 헉헉거리네요." 보호자님은 고리의 증상에 대해 차분하고 조리 있게 설명을 하셨다. 증상의 원인을 찾기 위해, 필요한 항목들을 확인했다.
"혹시 평소에 고리 성격이 어떤가요? 성격이 호기심이 많은 편이어서 산책하면서 이물을 먹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산책은 어느 정도 하나요? 밖에서 키우시나요? 아니면 실내에서 키우시나요? 동거견이나 동거묘는 있나요?"
보호자님의 답변 중에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고리는 실내가 아니고 공장 주변 야외에서 생활을 했고, 평소에도 호기심이 많아서 산책하면서 이것저것 주워 먹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일반적인 혈액검사와 응고계 검사 (지혈이 잘 되는지 평가하는 검사)를 진행하고, 흉부방사선을 촬영했다.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고리는 숨을 매우 가쁘게 쉬었고, 새빨간 선혈의 혈액 토해냈다.
혈액검사 상 다행히 빈혈은 없었고, 염증수치가 높았다. 응고계 검사 수치들은 지혈이 잘 되고 있지 않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폐에는 폐출혈 또는 폐렴 가능성 소견이 확인되었다. 문진, 전반적인 검사 결과를 종합해 보았을 때 현재 고리의 증상에 대한 실마리가 풀렸다.
'살서제 중독'
확실히 확인을 하기 위해서 보호자님께 가서 결과를 설명하며 물어보았다.
"공장에서 주로 키우셨다고 했는데, 공장 주변에 혹시 살서제가 있나요?"
마치 그게 왜 문제가 되느냐는 듯하게 보호자님이 반문하였다.
"네, 공장에 쥐가 많아서 살서제가 곳곳에 있어요. 그게 문제가 되나요?"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춰지는 것 같았다.
"고리는 지금 살서제 중독 상태입니다. 살서제의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고리가 먹은 살서제는 지혈을 방해하는 것을 방해해서 출혈을 일으키는 것이에요. 고리는 살서제를 많이 먹은 것 같고, 지금 폐에 출혈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내부 장기에도 출혈이 생길 수 있고, 온몸에 피멍이 들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코피도 생길 수 있고, 잇몸에서도 피가 날 수 있어요. 빈혈수치는 아직 정상이지만 낮은 편이고, 출혈로 빈혈수치가 떨어지면 수혈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은 수액을 주고 지혈을 도와주는 약물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지혈을 위한 응고인자를 보충해 줄 수 있는 혈장수혈도 필요합니다. 증상도 너무 심하고, 폐 상태가 이미 너무 좋지 않아서.. 예후는 신중해 보입니다."
보호자님은 입원치료에 동의하셨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달라고. 최선을 다해달라고 하셨다. 입원을 마치고 면회 후에 보호자님은 귀가하셨다. 고리는 멀어지는 보호자님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듯했다. 진돗개는 가끔 너무 사나워서 진료가 힘든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고리는 원래 성격이 순한 것인지 아파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 호의적이었고 처치를 위해 들어오면 누워있는 상태에서 꼬리를 흔들었다.
입원을 한지 하루가 경과하고, 치료에 반응이 있었는지 피를 토하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흉부방사선 상에서도 폐는 비슷했지만 호흡도 조금 더 나아 보였다. 하지만 배 쪽에 시퍼런 멍이 새롭게 확인되었다. 지혈이 잘 안 되어서 생길 수 있는 증상이다. 조심스럽게 채혈을 해서 빈혈수치를 확인해 보니 빈혈수치가 어제보다 현저히 줄어들어 있었다. 수혈이 필요한 정도의 수치였다. 보호자님께 연락을 해서 수혈의 필요성과 부작용을 설명드리고, 수혈을 진행했다.
수혈을 하고 조금 안정되는 듯했지만, 다시 피를 토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호흡도 안 좋아졌다. 흉부방사선을 촬영해 보았다. 폐가 더 좋지 않았다. 기존의 폐출혈에 혈토를 하며 내용물이 폐로 넘어가서 폐렴 가능성까지 있어 보였다. 검은색으로 보여야 할 폐가 액체가 있으면 하얗게 보이는데, 70% 이상 하얗게 보였다. 호흡이 계속 좋지 않아서, 보호자님을 호출했다.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보호자님과 면회를 했다. 대형견 입원장 안에서 고리는 보호자님 품에 안겨있었다. 마지막 순간이 오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보호자님. 안타깝지만, 고리가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어 보입니다. 고리가 지금 너무 고통 서러울 거예요. 조심스럽긴 하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치료를 지속하는 것보다는 편하게 보내주는 것도 생각해 볼 시점이네요.. 그리고 심폐소생술은 오히려 고리를 힘들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보호자님은 간신히 눈물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고리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차마 안락사는 못하겠습니다. 심폐소생술은 안 하는 것으로 할게요.."
"알겠습니다, 보호자님.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럼 일단은 심폐소생술은 하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30분쯤이 지나고, 고리는 마지막으로 선혈의 피를 토해내며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보호자님께 안겨있는 고리는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 듯 편안해 보였다. 보호자님은 하얗고 보드라운 털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인사를 하셨다.
"내가 미안해 고리야..."
보호자님은 마지막 말을 하시며, 고개를 숙이셨다.
보호자님은 살서제를 고리가 먹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셨다. 또한 살서제를 먹게 되면 어떠한 일이 생길지도 전혀 예상하지 못하셨다. 몇 달 이상을 계속 동일한 환경에 있었을 테니, 살서제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셨을 수 있다. 보호자님은 어제 동물병원을 오고부터 계속 스스로를 탓했을 것이다. 나는 말없이 고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보호자님은 그렇게 잠깐 고리를 안고 계시다가, 그래도 최선을 다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시고 동물병원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