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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봇 Oct 26. 2024

후회 없는 결정

산이는 보호자님과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등산을 가는 8살 비글이었다. 그래서 이름이 '산'이었다. 보호자님은 50대 중년 남성이셨고, 매우 유쾌하고 호탕한 성격이셨다. 가끔씩 동물병원에 내원하면, 등산복을 입고 오신 보호자님과 산이 발바닥에는 흙이 묻어있어서 등산하고 오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보호자님은 그럴 때마다 "산이는 내 아들처럼 키우고 있어요. 산에 갈 때마다 산이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등산할 맛이 납니다. 허허허"라고 크게 웃으며 말씀하시곤 했다. 


산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이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산이는 혈액검사 상 간수치가 높았고, 간에 결절들이 여러 개 있어서 모니터링 중이었다. 세침검사 (FNA,  얇은 바늘을 이용하여 병변의 세포를 뽑아 검사하는 방법)를 진행했었는데 종양성 병변 가능성은 낮았다. 그래서 3개월에서 6개월 단위로 간수치와 간결절들의 변화 양상을 추적관찰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산이가 목에 멍울이 크게 잡히는 것 같다고 하셔 내원하였다. 마지막 검사 3개월 이후에 내원한 산이는, 건강했던 마지막 모습이 무색할 만큼 기력이 전혀 없어 보였다. 혈액검사 결과를 보니 간수치 여라 종류가 모두 매우 높았고, 멍울은 목 밑에만 잡히는 것이 아니라 무릎 뒤, 어깨 앞에도 큰 멍울이 만져졌다. 초음파 상 간 쪽에 있는 결절들도 대부분 3~4cm로 매우 커져있었다. 간 주변의 림프절도 많이 커져 있어 전이가 의심되었다. 피부에 있는 림프절과, 간 쪽에 가장 큰 결절을 세침검사를 진행하니 림프종 (혈액암 일종) 가능성이 높았다. 림프종은 강아지에서 상대적으로 흔한 종양이다. 강아지의 경우 표재 림프절에 종양이 국한되어 있다면 예후가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나 (항암 치료 시 평균 기대수명 6개월~1년), 간에 전이 병변이 있는 경우는 그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들 수 있다. 


림프종의 경우 항암치료에 25주가 필요하고, 초기 10주는 매주 내원이 필요하고 그 이후에는 격주로 내원을 해야 한다. 항암부작용이 있거나 중간에 컨디션이 안 좋을 경우에는 중간중간 내원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항암을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항암스케줄과, 기대수명 등등 최대한 자세하게 보호자님께 설명을 드렸는데, 보호자님은 눈물을 보이셨다. 그렇지만 항암을 하면 산이가 너무 힘들어할 것 같고, 항암을 해도 예후가 그렇게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항암을 시작하는 것을 굉장히 망설이셨다. 안락사까지도 염두에 두고 계셨다. 보호자님들은 항암치료에 대하여 사람들의 경우로 대입하여 매우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으로 생각하고 계신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강아지 림프종에 대한 항암치료에서는 우려하는 것보다는 부작용이 적게, 심지어는 전혀 부작용을 보이지 않고 무사히 모든 과정을 마치는 경우도 있다. 


항암치료를 하든 안 하든 지금 컨디션으로는 입원을 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입원치료를 진행하였다. 스테로이드는 항암치료 여부와 관계없이 치료에 포함된다. 다행히 산이는 여러 대증 처치와, 스테로이드에 반응성이 매우 좋아서 입원 치료 동안에 표재 림프절도 눈에 띄게 작아졌고, 간수치도 크게 떨어졌다. 보호자님은 여전히 항암에 대해서 거부감이 크셨다. 보호자님이 걱정되시는 부분에 대하여 충분히 대화를 나눴고, 결국에는 일단 한 사이클이라도 항암을 진행해 보기로 했다 (1사이클은 4주 동안 매주 항암제를 번갈아가며 진행하게 된다). 다행히 항암제에 반응성이 매우 좋았고, 산이의 상태는 극적으로 좋아졌다. 퇴원 전에 진행한 복부초음파에서도 간에 있었던 종괴형태의 병변들도 매우 작아졌다. 산이는 4일 입원처치 후에 건강해진 상태로 퇴원할 수 있었다. 




이후 보호자님은 매주 스케줄대로 항암치료를 하기 위해 내원했으며, 다행히도 큰 부작용 없이 항암스케줄을 잘 소화하고 있었다. 어느 날과 다름없이 항암을 진행한 후에, 주차장으로 잠시만 와주실 수 있냐고 하시며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항암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하곤 얼마나 후회스러웠을까 싶습니다. 산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며 산이와 등산은 하고 있어요. 물론 너무 무리하지는 않고 있어요. 그때 선생님 덕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내 손을 커다란 두 손으로 잡아주시며, 말씀하셨다. 그리고 과일 상자를 건네주셨다. 쑥스러우신지 얼른 차를 타고 떠나셨다. 


몇 개월의 기대수명이란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짧기에 치료를 포기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고, 누군가는 절박하게 원하는 긴 시간일 수 있다. 강아지에서 림프종은 거의 100% 재발한다. 아마 언젠가는 산이도 다시 병변들이 커질 것이다. 그래도 지금도 등산을 계속하고 있는 보호자님과 산이의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지 않을까? 



이야기의 강아지 또는 고양이 이름은 가명입니다. 정보 보호를 위해 약간의 각색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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