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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봇 Sep 07. 2024

배가 불룩해요

2~3주 사이에 임신한 것처럼 배가 불룩해졌다는 닥스훈트 이랑이가 내원했다.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고, 숨도 가빠보였다. 몸집에 비해 배가 비정상적으로 불룩했다. 본능적으로 심각한 상황임을 감지했다. 그와는 정반대로 보호자님은 태연했다.


"랑이가 요즘 밥도 조금 덜 먹는 것 같고 기력이 조금 없어 보이네요. 배가 갑자기 불룩해졌는데, 혹시 임신한 것인가요?"


배를 만져보니 상당히 딱딱했다.

"보호자님. 임신은 아닌 것 같고요, 아무래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입니다. 얼른 필요한 검사를 진행하고 오겠습니다."


복부 방사선과 복부초음파, 혈액검사를 진행했다. 방사선 사진을 보니, 알 수 없는 커다란 덩어리가 배를 꽉 채우고 있었다. 불길하다. 초음파를 보니 비장 유래인 듯한 종양 덩어리가 그 작은 몸속에 가득 차 있었다. 자그마치 25cm 크기였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주변에 있던 다른 선생님들도 놀랐다.


방사선과 복부초음파 사진을 보호자님께 보여드리며 설명을 했다. 내 굳은 표정을 보고, 보호자님 얼굴에서 당혹스러움이 느껴졌다.  


"보호자님.. 영상 검사 결과 이랑이 배 속에 종양 덩어리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네?? 이게 다 종양이라고요..?!!"

보호자님은 눈물을 터트렸다. 계속해서 오열을 하셔서 더 이상 대화를 진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눈물을 닦을 수 있는 휴지를 전달해 주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5분쯤 지났을까? 보호자님은 그제야 조금 진정되셨다.


"그러면 선생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일단 CT를 찍어보고 다른 곳에 종양이 전이가 되어 있는지, 수술은 가능한 것인지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CT를 촬영했다. 결과는 더 절망적이었다. 심장 쪽에도 전이로 의심되는 병변이 보였고, 여러 가지 정황 상 비장 유래의 혈관 육종(hemangiosarcoma)이 의심되었다. 조직검사를 해봐야 알지만, 악성 종양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미 종양이 배 쪽을 지나는 대동맥 혈관에 맞닿아 있어서, 혈관을 침습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수술도 어려워 보였다. 안타깝지만 혈관육종은 수술을 해도, 항암을 해도 예후가 좋지 않은 편이다.


이 절망적인 소식을 전하기 전, 호흡을 가다듬고 보호자님께 하나하나 차분히 설명드렸다. 아까와는 다르게 보호자님은 담담하게 듣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니, 왜인지 모르겠지만 내 눈시울이 붉어짐을 느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은 뭐라도 하고 싶어요."


상화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을 충분히 드린 후에, 보호자님은 가장 적극적인 치료 (수술 후 조직검사 및 항암)를 원하셨다. 다음날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입원을 진행하며, 필요한 처치를 하고 밤 사이 모니터링해야 하는 것들을 꼼꼼히 작성해 두었다. 내일까지 무탈하길 바라며 퇴근했다. '내일 보자 이랑아!!'     




아침에 출근하기 전, 아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두의 바람과는 다르게 밤사이에 아랑이의 상태는 악화되었다. 혈압은 계속 떨어졌고, 숨쉬기는 점차 힘들 졌다고 한다. 혈압을 올려주는 약물들의 용량을 높이고, 종류를 바꾸어봐도 반응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배 안의 종양이 큰 혈관들을 누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순환이 어렵고 저혈압이 생긴 것 같았다. 보호자님이 오열하던 모습이 오버랩되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다.


출근 전부터 이런 소식을 듣게 되는 날에는 발에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걸음이 무겁다. 동물병원에 도착하자 보호자님께 전화를 드렸다. 이런 상황에 무슨 말이 위로가 되겠는가...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말씀은 차마 드릴 수가 없다. 전화를 끊고 난 후 아쉬움, 안타까움, 슬픔, 무기력함 등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고, 애꿎은 수화기만 오랫동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의 강아지 또는 고양이 이름은 가명입니다. 정보 보호를 위해 약간의 각색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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