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을 진단받고 1년 반 넘게 관리하던 사랑이라는 말티즈가 있었다. 여러 번 폐수종 위기를 이겨낸 강한 아이다. 보호자님들은 자매였고, 사랑이를 아들처럼 키우셨다. 지난 1년 반 동안 2~3주 간격으로 재진을 왔었고, 여러 번 고비를 같이 이겨냈기 때문에 사랑이, 보호자님들 모두와 정이 많이 들었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재진 일이었다. 사랑이는 이미 심장병 말기였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미용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사랑이는 얼굴을 덥수룩한 털로 덮여 있었다.
“사랑이, 지난 재진 이후에 호흡이랑 기침하는 것은 괜찮았나요? 기력이나 밥 먹는 것은요? 대소변도 별문제 없었지요?”
보호자님은 사랑이가 다행히 별다른 문제없이 잘 지냈다고 하셨다. 나는 평소처럼 흉부 방사선과 신장 수치 검사를 위해 사랑이를 데리고 처치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사랑이가 평소보다 채혈을 거부했다.
“사랑아,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은가 보네?”
사랑이를 달래며,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다 얼굴을 덮고 있는 털들을 옆으로 쓸어내리는 순간, 이게 웬걸...! 숨이 멎을 뻔했다.
사랑이의 한쪽 눈이 1cm가량 밖으로 완전히 튀어나와 있었다. 그 뒤로 가느다란 혈관들이 보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먼저 보호자님께 가서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계셨냐고 여쭤봤다.
“집에서는 안 그랬는데요..? 사랑이 괜찮은 거죠..?”
나는 허겁지겁 안과 선생님을 찾아 안과실로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진료 중인 아이가 눈이 튀어나와 있는데 한 번 봐주실 수 있나요?!" 마침 안과 교수님이 계셔서, 한번 보자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발을 동동동 구르며 초조했지만, 교수님은 여유롭게 걸어가셨다.
“에이, 별거 아니네.”
한 번 쓱 보시더니, 생리식염수로 눈 주위를 세척하시고 말 그대로 ‘쑥’ 눈을 집어넣으셨다.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괜찮을 거라는 말씀과 함께 교수님은 그 자리를 떠나셨다. 사랑이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하게 편안하게 앉아있었다.
상황이 정리되자, 다른 선생님들은 내가 이렇게 당황해서 빨리 뛰어다닌 것은 처음 봤다고 했다. 항상 여유 있고 느긋해 보였는데 허둥대는 모습도 있다며 놀렸다.
“저도 최근 몇 년 중에 가장 놀랐던 것 같네요.. 그나저나 정말 다행입니다.”
다행히 사랑이의 눈에는 큰 문제없었고, 원래 내원 이유였던 흉부 방사선과 신장 수치도 괜찮았다. 정말 잊을 수 없는 하루였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나도 안과 교수님처럼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다시 눈을 제자리도 돌려놓으며 "가끔 이럴 수 있는데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야기의 강아지 또는 고양이 이름은 가명입니다. 정보 보호를 위해 약간의 각색이 있을 수 있습니다.